태조
-
○ 하공진(河拱辰) : 성종(成宗) 때에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다가 목종(穆宗) 때에 중랑장(中郞將)에 제수되었다. 임금의 병이 매우 심하니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芳)과 중랑장 탁사정(卓思政)과 더불어 항상 근전문(近殿門)에서 지키다가 이어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郎中)으로 옮겼다. 현종(顯宗)이 거란(契丹, 글안)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하니 하공진이 따라가 길에서 배알...
-
갈마정 우물과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 관련 이야기.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속사리 속사마을[옛 사월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진양민속지』에 수록되어 있다. 이성계가 남해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올라가는 길에 속사마을[옛 사월마을]을 지나다 목이 말라 마침 갈마정 우물에서 물을 긷는 처녀에게 물을 청했다. 처녀는 바가지에 물을 뜨더니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을 훑어 물 위에 띄...
-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전해오는 진양정씨 가문의 충신에 관한 설화. 1980년 8월 7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일반성면 창촌리 신촌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손영권(남, 56세)이다. 사봉면(寺奉面)에 진양정씨(晋陽鄭氏) 가문의 사당이 있는데, 사당 주인공 정씨의 이름...
-
경상남도 진주의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 지방통치구역. 강주는 본래 백제의 거열성(居列城)인데, 신라 문무왕 3년(663) 2월에 빼앗겨 신라 영토가 되었다. 이후 신문왕 5년(685)에 거열주를 뽑아내어 청주(菁州)를 설치하고 총관(摠管)을 두었다. 경덕왕 16년(757)에는 다시 전국의 지방조직을 9주, 5경으로 정비하고 명칭을 고쳤는데, 이때 청주를 강주(康州)로 개칭하였다....
-
조선 전기의 학자 정이오(鄭以吾)의 시문집. 1939년에 정이오의 후손인 정장현(鄭璋鉉)이 경상남도 진주의 영남재(潁南齋)에서 간행하였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권1·2에 시(詩) 73수, 전(箋) 2편, 소(疏) 1편, 서(序) 4편, 기(記) 14편, 전(傳) 1편, 묘지명 1편, 잡저 1편과 부록으로 사제문(賜祭文) 1편, 이조사척록(李朝史摭錄) 1편, 유사(...
-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남쪽의 통일신라[676~935]와 북쪽의 발해[698~926]가 양립하던 시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676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이후 935년까지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영토를 다스리게 된다. 한편, 통일신라 북방에는 698년 고구려의 장수 출신인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중국 길림성 돈화시 동모산을...
-
현실의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가 되는 것을 궁극적 이상으로 삼는 종교. (1) 삼국시대의 불교 : 삼국 중 불교를 제일 먼저 수용한 나라는 고구려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372년(소수림왕 2) 6월에 전진(前秦) 왕 부견(苻堅)이 사신과 중 순도(順道)를 파견하여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다고 하였다. 『삼국유사』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 이때 도입한 고구려불교의 특징은...
-
조선시대 각 지방 군현의 촌락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 사창은 중국에서 각 지방 행정단위인 ‘사(社)’에 창고를 세워 기근에 대비한 의창(義倉)과 남송의 주희(朱熹)가 실시한 사창법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제도들을 본받아 고구려 때는 진대법(賑貸法)을, 고려시대에는 의창·상평창 제도를 실시하였으며, 조선시대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사창제도를 실시하였다. 사창은...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전승되는 설화에 대한 개관(槪觀). 진주지역에는 명석전설[鳴石傳說]과 같은 지명전설과 정온전설·강목발전설 등의 인물전설이 다수 전승되고 있다. 운돌전설의 내용은 고려 말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여 진주성을 석성으로 개축하였는데, 그 역사에 가담했던 스님이 명석면(鳴石面) 동전리를 지나다가 암수 두 개의 큰 돌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서 전승되는 우곡 정온의 충절을 담은 인물담.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성재옥이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서문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정문석(남, 당시 63세)이다. 이 내용은 『진양군사』, 『진주시사』 등에도 소개되어 있다. 우곡(隅谷) 정온(鄭溫)은 고려 조정에서...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이다. 935년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하려 할 때 극력 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마의태자를 따라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하나 그의 행방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그 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고, 김덕지의 14세손 김환(金環)이 고려 때에 벼슬이 삼중대광(三重大匡) 영도첨의사(領都僉...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태조 이성계가 이제에게 내린 개국공신 교서. 고려에 이어 조선에서도 공신에게 교서와 녹권을 발급하는 제도가 지속되었다. 개국공신교서는 조선의 개국에 큰 공을 세운 공신들에게 각각 발급되었다. 「이제 개국공신교서」는 1999년 6월 19일 보물 제1294호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6월 27일 국보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이도(李棹)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이도의 초명은 치(齒)이며 시호는 성절(聖節)이다. 본래 공주에 세거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을 정벌하고자 남하하여 금강에 도착했을 때, 강물이 범람하자 태조를 도와 무사히 강을 건너게 했다. 그래서 태조로부터 도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통합삼한개국익찬(統合三韓...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복여(福如), 호는 운파(雲坡). 우곡(隅谷) 정온(鄭溫)의 후손이다. 『증보 진양속지(增補 晋陽續誌)』에 의하면, 천성이 영민(穎敏)하고 재예(才藝)가 남들보다 출중하였다. 김단계(金端磎), 박만성(朴晩醒)을 따라 학문을 연마하였다. 고려 말 문신이었던 정온이 태조의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고향으로 내려와 지은 우곡정(隅谷亭)[경상남도 진주시 사...
-
고려 후기의 문신. 진주 출신. 호는 우곡(偶谷). 정승을 지낸 정석(鄭碩)의 아들이다.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청맹(靑盲 : 겉은 멀쩡하나 실제는 눈이 안 보임)을 앓는다고 핑계대고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으로 들어갔다가 말년에는 진주 사봉면 사곡리에 우곡정(隅谷亭)을 짓고 은거하였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가 여러 번 초빙하였으나 응하지 않으므로 신하를 보내...
-
1392년에서 1402년까지 진주에 설치된 행정 관서. 대도호부(大都護府)는 그 읍격(邑格)이 부윤(府尹)이 파견되는 부(府)와 도호부사(都護府使)가 파견되는 도호부(都護府)의 중간에 위치하며 목사(牧使)가 파견되는 목(牧)과 같다. 1392년(태조 1)에 태조의 비 신덕왕후의 내향이라고 하여 진주목(晋州牧)을 높여 진양대도호부(晋陽大都護府)라고 하고 진양대도호부사(晋陽大都護府使)...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 오방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하륜의 시문집 책판. 하륜(河崙)의 후손인 용와(容窩) 하진현(河晉賢)이 찬술한 『호정집(浩亭集)』 발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아아, 후손이 없고 병란을 여러 차례 겪어서 남기신 문집이 흩어져 전해지지 않는다. 족인 하진달(河鎭達)이 사방으로 수소문하고 널리 찾아다녀서 비로소 초고를 만들었다. 또 족인 하속(河涑...
-
조선 중기 17세기 초에 이루어진 진주의 사찬(私撰) 지리지. 지리지는 수록된 공간 범위에 따라 전국지인 여지(輿誌)와 지방지인 읍지(邑誌)로 나눌 수 있다. 또 지리지를 편찬한 주체에 따라 국가기관에서 만든 관찬(官撰) 지리지와 개인이 편찬한 사찬 지리지로 나누어진다. 전국 단위의 지리지로는 『동국여지승람』이 대표적이다.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하게 편찬된 읍지는 전국 지리지인 『동...
-
고려시대 이후 확립된 군현제도에 의하여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는 치소가 있는 진주의 도시적 구역. 읍치(邑治)란 고려시대 이후 확립된 군현제도에 의하여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는 치소(治所)가 있는 도시적 구역으로, 흔히‘읍(邑)’혹은‘읍내(邑內)’라고 부르는 곳이다. 『삼국사기』지리지(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양지(晋陽誌)』 등에 기록된 건치연혁을...
-
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씨와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어 모여 사는 마을. 진주는 신라시대 구주의 하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항상 영남의 계수관으로 그 위치를 지켜왔으며 토성세력도 강성하였다. 진주의 성씨는 정(鄭), 하(河), 강(姜), 류(柳), 소(蘇), 임(任), 강(康), 김(金), 박(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목(晉州牧) 조에 나타나 있다....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한씨(韓氏)는 기자조선에 연원을 두고 있다. 위만에게 밀려 마한으로 온 준왕(準王)[기자(箕子)의 40대 후손]의 8세손인 원왕(元王)은 3형제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인 우량(友諒)이 신라의 상당(上黨)[청주의 옛 지명]으로 옮겨 한씨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사적에 의하면 한씨의 시조는 기자의 후예 우량의 32세손 한란(韓蘭)[?~?]이다. 한...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서 태자를 교육시키는 태사삼중대광에 봉해졌다. 그의 5세손인 윤관(尹瓘)[1040~1111] 장군은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1107년(예종 3)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한 뒤 여진정벌에 나서 적 5천 명을 죽이고 130명...
-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순흥부사를 지낸 하윤린(河允潾)이다. 1347년(충목왕 3)에 태어나 1365년(공민왕 14) 문과에 급제한 후 1367년 감찰규정이 되어 신돈(辛旽) 문객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좌천되었고, 1388년(우왕 14)에는 최영(崔瑩)의 요동정벌을 반대하여 양주로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