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갑산
-
진주의 진산(鎭山)인 비봉산과 관련된 읍치 풍수, 취락 및 주택 풍수, 비보 풍수, 풍수설화 등의 풍수적 사실과 역사적 경관, 그리고 옛 진주 주민들의 비봉산에 대한 문화생태학적인 환경지각과 그 의미를 포함하는 말. 진주의 비봉산은 진주 도심의 북쪽에서 시내를 에워싸고 있는 표고 162m의 나지막한 산으로서 동서로 크게 날개를 펼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서쪽 날개는 두고개(137m...
-
경상남도 진주시 이현동에 자리 잡은 숙호산에 있는 등산로. 숙호산 등산로의 출발점은 두고개와 대아고등학교를 거쳐 정상으로 등반하는 코스와 석갑산에서 능선을 타고 동돌개비고개를 거쳐 등반하는 두 개의 코스가 있다. 두 코스의 정상까지의 평균 거리는 3~4㎞정도로 비슷하며, 등산 코스의 총 길이는 약 7㎞이다. 등산 시간은 보통 40~50분 정도 걸린다. 경상남도 진주시의 오죽광장에서...
-
경상남도 진주시의 웰빙 체험공원 추진 사업으로 조성된 6개의 시민체육공원. 2005년부터 경상남도 진주시에서는 인근의 가좌산, 숙호산, 선학산, 석갑산, 비봉산, 망진산에 진주시 시민들의 휴식과 건강 활동을 겸하는‘웰빙 체험공원 조성’을 추진하였다. 1. 가좌산 체육공원 가좌산 체육공원은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가좌산 내에 자리한 체육공원으로, 총 600㎡의 면적에 조성되어...
-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에 위치한 고려 말~조선 전기의 무신인 정설(鄭舌) 부부의 묘소. 진주시 서쪽 석갑산(石岬山) 북사면에 축조되어 있는 조선시대 방형분(方形墳)으로 둘레돌에 고분의 축조시기와 피장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진주정씨(晋州鄭氏) 공대공파(恭戴公派)의 파조(派祖)인 정척(鄭陟)의 아버지 정설(鄭舌)과 부인 강씨(姜氏)를 합장한 무덤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 산5번...
-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평거동 석갑산(石岬山) 남사면에 축조되어 있는 총 6기의 고려시대 방형분으로, 둘레돌에 고분의 축조시기와 피장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6기 모두 나주정씨(羅州丁氏) 집안의 무덤으로 고려시대 1079년(1호분)부터 1229년(6호분)까지 150년간에 걸쳐 축조되었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내부시설은 알 수 없으나, 거창...
-
고려시대 이후 확립된 군현제도에 의하여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는 치소가 있는 진주의 도시적 구역. 읍치(邑治)란 고려시대 이후 확립된 군현제도에 의하여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는 치소(治所)가 있는 도시적 구역으로, 흔히‘읍(邑)’혹은‘읍내(邑內)’라고 부르는 곳이다. 『삼국사기』지리지(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양지(晋陽誌)』 등에 기록된 건치연혁을...
-
진주의 봉황형국을 완성하기 위한 진압과 비보를 자세하게 기술한 작품 진주의 진산(鎭山)은 비봉(飛鳳)의 모습이요 안(安)은 금룡(金龍)이니 관기는 그 아래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무릇 사방에서 배포(排布)를 모두 봉(鳳)에 붙쳐서 이름하였으니 객사(客舍)의 앞에 누(樓)로는 봉명(鳳鳴)이 있고 관(館)으로는 조양(朝陽)이 있으며 마을 이름으로는 죽동(竹洞)이 있고 벌로수(伐老藪)와...
-
체육활동을 통한 여가선용을 목적으로 하거나 각종 운동 경기를 개최하기 위하여 마련된 시설, 또는 장소. 체육시설의 설치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는 체육시설을 ‘체육활동에 지속적으로 이용되는 시설과 그 부대시설’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국민체육진흥법 제 2조에 따르면 체육은 ‘운동경기 야외운동 등 신체활동을 통하여 건전한 신체와 정신을 기르고 여가를 선용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
-
경상남도 진주시 서부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조선시대에 역이 있었다 하여 ‘역촌’ 또는 ‘역말’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지만, 남강 주변 충적평야에 옥토가 쌓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 곳이라 하여 ‘평거’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평거면(平居面) 평거동(平居洞) 및 중안면(中安面) 평촌동(坪村洞)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 각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 평거리라...
-
경상남도 진주시 평거동에서 진행되고 있는 택지개발사업. 평거동(平居洞)은 석갑산의 동남쪽 일대 남강 퇴적지 가장자리에 취락이 형성되면서 이후 집성촌으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락의 발달 형태로 보면 동으로 남강이 흐르고 강 주변으로 퇴적층 옥토가 쌓여 있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여 평거라는 이름의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200만호 주택건설에 필요한 택지를 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