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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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趙琦) : 을축년(인조 3년, 1625)에 와서 정묘년(인조 5년, 1627)에 갔다. 아래 유승서(柳承瑞)에 이르기까지는 병사(兵使)로써 목사(牧使)를 겸했다. ○ 허완(許完) : 정묘년(인조 5년, 1627)에 와서 무진년(인조 6년, 1628)에 갔다. ○ 박상(朴瑺) : 무진년(인조 6년, 1628)에 와서 경오년(인조 8년, 1630)에 갔다. ○ 이익(李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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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기필(崔琦弼) :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무과에 올라 봉사(奉事)가 되었더니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晋州城)에 들어왔다. 병사(兵使) 최경회(崔慶會)가 임금이 피난한 곳으로 계문을 올리니 본주의 판관(判官)을 삼았다. 성이 함락되어 순절했는데 계해년(영조 19년, 1743)에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추증되고 창렬사(彰烈祠)에 모셨다. ○ 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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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있는 서원. 경상도 지역에 건립된 193개의 서원 중 경상남도 지역은 19개 군에 44개 서원이 건립되었는데, 그 가운데 진주지역에 해당되는 서원은 7개로 경상남도에서 가장 많다. 재실의 수에 있어서도 진주지역에 약 500여개가 분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현재도 문중에 따라 새로 건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원은 선현을 모시는‘사(祠)’와 제자를 교육하는‘재(齋)’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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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遊覽)하는 일. ‘관광’이라는 어휘는 중국 주(周)나라 시대의 『역경(易經)』에 “관국지광(觀國之光), 리용빈우왕(利用賓于王)”이라 하여 ‘나라의 빛을 본다’는 뜻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 말은 타국의 광화(光華)를 보기 위해 여러 나라를 순회 여행하는 ‘이동의 개념’과, 타국을 순방하여 그 나라의 토지·풍속·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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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 창렬사(彰烈祠) 내에 있는 충무공 김시민(金時敏) 등에게 내린 사제비. 김시민은 본관이 안동이며, 자는 면오(勉吾)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적 대군이 진주성을 포위하자 불과 3,800명의 병력으로 7일 간의 공방전 끝에 적 30,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격퇴시켰다. 이것이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다. 그러나 김시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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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상주. 자는 성인(成仁). 고려 때 직제학을 지낸 김후(金後)의 후손으로 군수 김녹돈(金祿敦)의 손자이다. 아들 김봉승(金鳳承)은 정유재란 때 진주 발재[鉢峴]에서 전사하였다. 출생년은 미상으로 산청의 단성에서 살았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한 후 1583년(선조 16) 북평사 이제신(李濟臣)과 함께 군관으로 출정하여 북쪽 야인을 격퇴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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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 아버지는 진사 김언침(金彦琛)이다. 1573년(선조 6) 은일지사(隱逸之士)로 천거 받아 군기시주부가 되고, 그 뒤 용안현감과 강원도, 경상도의 도사를 지냈다. 사헌부지평의 자격으로 정치의 폐단을 논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임실현감으로 좌천되었다. 그 뒤 담양부사,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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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강 가에 있는 바위벽과 그에 새겨진 글씨. 남강 암각은 ‘일대장강 천추의열(一帶長江 千秋義烈)’이라는 논개(論介)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는 바위벽이다. ‘남강 암각(南江 巖刻)’이라는 명칭은 진주시에 있는 남강 가에 있는 바위벽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그냥 ‘암각’이라고도 불린다. 창렬사 경내 어제비문을 정비한 다음 처절했던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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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현동에 있는 사립고등학교. ‘성실, 봉사, 애국하는 인간 교육’이 교육 목표이며, 교훈은 ‘성실, 봉사, 애국’이다. 1943년 4월 8일 항일 학생운동 단체인 ‘반진단’에서 아시아의 자립과 민주 독립을 위한 교육기관 설립을 발의하였다. 1954년 2월 23일 학교법인 하천학원 설립인가를 받아 박종한이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66년 1월 22일 대아고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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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현동에 있는 사립중학교. 창의적이고 능력 있는 민주시민 자질 육성이 교육의 목표이며, 교훈은 ‘근검, 신의, 협동’이다. 1943년 4월 8일 항일 학생운동 단체인 ‘반진단’에서 아시아의 자립과 민주 독립을 위한 교육기관 설립을 발의하였다. 1953년 12월 23일 학교법인 하천학원을 설립하여 1955년 2월 14일 개교하였다. 1961년 12월 16일 4학급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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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창렬사에 배향된 배위에 대한 내용을 새긴 석비. 창렬사의 동사와 서사에 배향된 인물에 대한 기록이므로 ‘동배서배비’라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제1차 진주성전투(진주대첩)와 제2차 진주성전투(계사년 전투)에서 순국한 인물들 39기의 위패 중 창렬사의 동사와 서사에 배향된 인물에 대해 1833년(순조 33) 임금이 위무의 글을 지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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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녹권.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박세항의 공을 찬양하여 내린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으로, 선조 38년(1605) 도승지 신흠(申欽)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내렸다. 박세항은 현재 창렬사에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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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진주목의 판관으로 있으면서 1593년 진주성전투로 진주성이 함락될 때 전사했다. 1743년(영조 19)에 병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경상남도 진주 창렬사(彰烈祠)에 배향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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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진경(眞卿).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민(官民)이 흩어짐을 보고, 같은 고향의 뜻있는 선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이에 합세하여 그를 대장으로 추대하려 하였지만 사양하고 자신은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군무를 정돈하며,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면서 군의 사기를 높였다. 1593년(선조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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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학봉 김성일의 명으로 김시민을 도와 진주성을 지켰다. 1593년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했다. 1743년(영조 19)에 주부(主簿)에 추증되었으며, 진주의 창렬사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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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회원(會元). 기묘명현(己卯名賢)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며, 대사성을 지낸 양응정(梁應鼎)의 아들이다. 1561(명종 16)에 태어나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경서(經書)에만 전심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과 끝까지 항전하다가 진주성전투에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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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잃은 관인(官印)을 다시 찾아 세운 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듬해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가 병마절도사 관인을 안고 남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이후 1747년(영조 23) 이 도장을 남강 물속에서 건져 당시의 병사 최진한(崔鎭漢)이 조정에 아뢰었다. 도장에는 ‘慶尙右道兵馬節度使印(경상우도병마절도사인)’이라 새겨져 있고, 1582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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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 진주성 전투에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장졸들을 기려 지어 내려준 제문. 1833년(순조 33) 3월 11일 임금이 우병사(右兵使) 안광찬을 보내어 충무공 김시민(金時敏)의 넋에 제사하도록 유시하고, 아울러 문열공 김천일(金千鎰), 무민공 황진(黃進), 충의공 최경회(崔慶會), 충의공 장윤(張潤)에게 각각 제문을 지어 내려 제향토록 하였다. 그리고 양산주를 비롯한 12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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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기계(杞溪). 진사 유백온(兪伯溫)의 아들이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의병을 불러 일으켜 의병장이 되어 계사년(1593년) 진주성이 떨어질 때 장렬히 전사했다. 1743년(영조 19)에 주부(主簿)에 추증되었으며 진주의 창렬사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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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파평(坡平). 윤사복(尹思復)은 첨정 벼슬에 있을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에 입성하였다가 계사년(1593년) 진주성 함락 때 전사했다. 1743년(영조 19)에 병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현재 진주의 창렬사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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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 정철(鄭澈)의 막료로 있었는데, 적개의병장(敵愾義兵將) 변사정(邊士貞)이 그의 현명함을 듣고 청하자 부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나이가 너무 어려 부하들이 잘 따르지 않았으나, 신상필벌(信賞必罰)을 강화하고 사졸과 고락을 함께 하니 사람들이 점차 이에 복종하였다. 1593년 진주성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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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목천(木川). 자는 명보(明甫). 아버지는 선전관 장응익(張應翼)이다. 성품이 강직하고 키는 팔 척이며, 특히 힘이 뛰어났다. 평소 유학에 뜻을 두어 경사자집(經史子集)에 통달하였다. 여러 번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자 활쏘기와 말 타기에 전념,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여 북도 변장을 제수받았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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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의 수문장을 지냈으며, 이듬해 계사년에 진주성전투에서 최후를 맞았다. 1743년(영조 19)에 호조좌랑으로 추증되었으며, 경상남도 진주 창렬사(彰烈祠)에 제향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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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무신.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의하면, 훈련원 주부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1593년(선조 26) 진주성전투에 참전하여 전사했다. 1743년(영조 19)에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되었으며,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창렬사(彰烈祠)에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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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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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사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진주성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등 39위와 모든 군졸의 신위를 안치하기 위하여 1595년 경상감사 정사호(鄭賜湖)가 건립하였다. 1607년 창렬사라 사액되었고, 1712년(숙종 38) 병사 최진한(崔鎭漢)에 의하여 중수되었다. 김시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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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대표하는 명승지. 진주성(晋州城)은 남성동과 본성동에 위치하며, 촉석성(矗石城) 혹은 진양성(晋陽城)으로도 불린다. 조선시대 진주성의 내성과 그 주변 지역 176,804㎡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촉석루(矗石樓)는 남강 가 돌벼랑 위에 세워진 우뚝한 누각으로, 남강 가 뾰족뾰족한 돌의 모양을 따서‘촉석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진주성의 남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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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창렬사를 중수하고 지은 글. 창렬사는 1607년(선조 40)에 건립되어 수차의 중수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심히 퇴락하게 되었다. 따라서 1962년 11월 15일 퇴락한 창렬사를 중수하고 이를 기념하여 창렬사 중수기를 지었다. 경상남도지사 명의로 되어 있으며, 창렬사의 건립 경위, 일제강점기 때의 퇴락 모습, 진주 유림들의 중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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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서 전승되는 창열사(彰烈寺) 중수와 관련한 설화. 창열사 중수 전설은 특정 지역을 한계로 하는 지역적 전설이며, 역사적 사실로부터 성립하고 성장한 역사적 전설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귀신은 민간에 전승되는 설화에서 뿐만 아니라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다루어진 소재였다. 귀신담은 민담에서는 신이담(神異談)의 일종으로 널리 전승되는 소재이다. 사실 이러한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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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문신, 의병장.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선우(善遇). 호는 삼계(三溪)·일휴당(一休堂). 전라남도 능주(陵州)[화순] 출신. 고려 명신 최충(崔冲)의 후손으로 최천부(崔天符)의 아들이다. 1532년(중종 27) 출생하여 1593년(선조 26) 의병장으로 왜적과 싸우다 진주 남강에 투신, 자결하였다. 양응정(梁應鼎)·기대승(奇大升)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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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전주.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 출생년은 미상이다. 천성이 어질고 품행이 발라 일찍이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봉사가 되었다. 이후 진주부관을 지낸 뒤, 관직에서 물러나 진주 서쪽 백운동(白雲洞)에 살며, 젊은 유생들과 함께 학문과 도의를 강론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지휘하여 1593년(선조 26)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성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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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명숙당(明叔堂).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녕최씨 후손이다. 아버지는 참봉 최수만(崔壽萬)이고,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이며, 부인은 진주강씨이다. 1554년(명종 9)경 당시 진주목 진성면 대사리에서 태어나 북면 사죽리 단지동으로 이사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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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에 있었던 사우.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진주성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신위를 모시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김시민의 신위는 창렬사(彰烈祠)주벽에 옮겨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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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충신은 전통시대의 사상을 포괄하여 내려오는 용어이지만, 나라에 충성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할 수 없는 기본적 덕목이다. 이러한 충성심을 발휘하여 오늘날까지 후세의 칭송을 받고 있는 충신들은 그 마음이 항상 나라와 임금, 그리고 겨레를 위하는 일념에 차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개인의 영달이나 어느 한 집단의 권력 쟁취를 위하여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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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하계선(河継先)은 어린 선비의 몸으로 의병을 일으켜 계사년 진주성 함성 때 장렬하게 전사했다. 1743년(영조 19)에 호조좌랑으로 추증되었으며, 진주의 창렬사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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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추사체 서예가. 하동주는 1879년에 경상남도 거제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진주로 이주하였으며, 아버지 하제봉(河濟峰)으로부터 추사체를 전수받아 추사체로 일가를 이룬 진주시의 대표적인 서예가이다. 하동주는 추사체의 행서에 주력하여 경지에 올랐다. 일생을 진주시에 주로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고, 진주지역의 서예가로 활동한 은초 정명수와 도연 김정에게 추사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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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응서(應瑞), 호는 지명당(知命堂).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현손이며, 하무(河楙)의 아들이다. 1661년(현종 2) 진주 수곡면 사곡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재주가 뛰어나고 견문이 넓어 문장을 만드는 데 있어서 모두 경전의 뜻을 전하였다. 당시의 학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와 눌암(訥菴) 이광정(李光庭)과 더불어 학문과 도의를 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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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해주정씨(海州鄭氏)는 고려 신종[1197~1204]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전법정랑(典法正郞) 시중평장사(侍中平章事)의 관직을 지낸 정숙(鄭肅)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선계(先系)는 문헌이 전해오지 않아 상고할 수가 없으나, 해주(海州) 수양산(首陽山) 아래에서 세거했던 사족(士族)으로 고려 때에 정씨로 사성(賜姓) 받았다고 전한다. 시조 이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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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안에 있는 사찰. 고려 말 처음 건립될 당시의 이름은 내성사(內城寺)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숙종이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호국사(護國寺)라는 이름을 내렸다. 고려 말기에 왜구(倭寇)의 빈번한 침입을 막기 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 승병(僧兵)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다. 진주성 내 서장대와 창렬사 사이의 골짜기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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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명보(明甫). 영의정을 지낸 황희(黃喜)의 5대손이며, 좌의정에 추증된 황윤공(黃允恭)의 아들이다. 1550년(명종 5) 출생하여 1593년(선조 26)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할 때까지 일생을 무장으로서 활약하였다. 평소 인품이 중후하고 절개가 남달리 굳었으며, 힘세고 날쌨다.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