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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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특(姜智特) : 참의(參議) 강우(姜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품이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고 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절행으로 고을에 울렸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영매하여 굳세고 뛰어난 것이 사람들의 경탄할 바”라고 했다. ○ 하경소(河鏡昭) : 자는 공극(公極)이요, 호는 동야(東野)니 각재(覺齋) 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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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공진(河拱辰) : 성종(成宗) 때에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다가 목종(穆宗) 때에 중랑장(中郞將)에 제수되었다. 임금의 병이 매우 심하니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芳)과 중랑장 탁사정(卓思政)과 더불어 항상 근전문(近殿門)에서 지키다가 이어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郎中)으로 옮겼다. 현종(顯宗)이 거란(契丹, 글안)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하니 하공진이 따라가 길에서 배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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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륜(河崙) : 고려 말에 과거에 합격해 중앙과 지방에 역임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재질이 있었다. 태종(太宗)을 도와 정사좌명공신(定社佐命功臣)이 되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으로 봉했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를 문충공(文忠公)이라 했다. 『호정집(浩亭集)』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하연(河演) : 하윤원(河允源)의 손자이다.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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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선비정신에 관한 설화. 남명 조식 설화는 1622년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이 완성한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처음 실렸으며, 전통문화연구회가 2001년에 편찬한 『어우야담』에 국역하여 다시 수록하였다. 남명 조식은 두류산(현 지리산)의 산천재(山天齋)에서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명망이 높았고, 이에 여러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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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전해오는 돌장석의 유래에 관한 전설. 진주시 집현면 냉정리(冷井里)로 들어가는 입구에 ‘진주 북 20리’라고 새겨져 있는 돌장석이 있다. 이 돌장석은 조선시대 때 마귀할멈이 지팡이로 사용하던 것이라고 전해오는데, 돌장석 설화는 돌장석이 그 자리에 있게 된 유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돌장석 설화는 진주시청 인터넷 홈페이지의 진주시 읍면동 홈페이지 내에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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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백부(伯父), 호는 통정(通亭). 할아버지는 중대광(重大匡) 강군보(姜君寶)이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강시(姜蓍)의 아들이다. 강종덕(姜宗德), 강우덕(姜友德), 강석덕(姜碩德), 강순덕(姜順德)을 아들로 두었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좨주[成均祭酒]가 되었으며, 밀직사의 제학·부사·첨서사사(簽書司事)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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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황해도관찰사 곽월(郭越)의 아들이고, 남명 조식(曺植)의 외손이다.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왕의 뜻에 맞지 않는 글귀 때문에 파방(罷榜)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황해도 의주(義州)로 피난하자, 경상남도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 5월 경상남도 함안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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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에 있었던 지명. 이 곳을 노루목(또는 노루미)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 산자락을 넘어가는 고개가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연유한다. 그래서 옛 문헌에는 ‘노루 장(獐)’자와 목 항(項)‘자를 써서 한자어로 장항(獐項)이라고 했다. 노루목은 우수리 우수마을회관에 가까워 우수리 노루목이라고도 부르지만 용산리 노루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옛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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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진산(鎭山)인 비봉산과 관련된 읍치 풍수, 취락 및 주택 풍수, 비보 풍수, 풍수설화 등의 풍수적 사실과 역사적 경관, 그리고 옛 진주 주민들의 비봉산에 대한 문화생태학적인 환경지각과 그 의미를 포함하는 말. 진주의 비봉산은 진주 도심의 북쪽에서 시내를 에워싸고 있는 표고 162m의 나지막한 산으로서 동서로 크게 날개를 펼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서쪽 날개는 두고개(137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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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수곡면 대천리에 있는 당산목. 대천리 마을공동체 신앙으로 동제를 지내던 나무를 말한다. 보통 마을공동체 신앙은 상당신과 하당신으로 구성된다. 상당신은 마을 뒷산 조용하고 그윽한 곳에 모신 산신이며 하당신은 마을 입구에 모셔져 있는 동구나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수곡면 대천리 산 104번지는 넓은 들을 끼고 있는 골짜기로서 이곳에서 마주보는 앞산이 옥녀봉이며, 동쪽으로 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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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창촌리 직금마을과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 산 104번지 사이의 골짜기. 대천리 산 104번지 앞의 들은 현재 모두 논으로 바뀌었지만 원래 배씨(氏)들이 큰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곳이다. 이 마을은 뒷산 기슭에 ‘한새미’라는 큰 샘을 가지고 있어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과거 산신제를 지내던 장소여서 이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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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로부터 승산동이라 불렸으며, 한양에서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안다고 할 만큼 천석군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는 구전이 있으며, 승산교, 승산도랑, 승산연정 등의 관련 지명들이 남아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승어산리(상승어산), 하승어산, 무등촌, 허곡, 임내리를 병합하여 승내리라 하였다. 1995년 11월 1일에는 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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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서 전승되는 우곡 정온의 충절을 담은 인물담.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성재옥이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서문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정문석(남, 당시 63세)이다. 이 내용은 『진양군사』, 『진주시사』 등에도 소개되어 있다. 우곡(隅谷) 정온(鄭溫)은 고려 조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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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을 조리하여 판매하는 곳. 음식점이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 생겼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우리의 의식주생활의 기틀이 잡힌 때부터라고 추측된다. 문헌상으로는 김유신(金庾信)이 ‘천관(天官)의 술집’에 드나든 데에서 비롯되는데, 지금의 기생집과 같은 곳으로 ‘술과 음식을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1.삼국시대의 주막(酒幕) 삼국시대부터 불교가 성하면서 사원에서 재(齋)를 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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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음(湖陰)이다. 부사 정광보(鄭光輔)의 아들이며,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조카이다. 1507년(중종 2)에 진사가 되고, 1509년(중종 4)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514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고, 1516년 황해도도사로서 문과중시에 장원하였으며 사간을 거쳐 1523년 부제학이 되었다. 1534년 동지사(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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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냉정리 산 317-3번지에 있는 이정표. 조선시대의 이정표 비석으로 천태산 마구 할머니에 관한 전설과 연관되어 있다. 천태산 마구 할미가 진주성을 쌓기 위해 세 개의 바위를 한 개는 머리에 이고, 한 개는 지팡이로 짚고, 마지막 한 개는 치마에 담아 가져오고 있었다. 도중에 진주성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팡이로 짚고 오던 바위를 마침 있던 자리에 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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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 조선 초기에 진주에는 강씨·하씨·정씨로부터 인물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이성계는 진주 사정을 잘 아는 무학대사(無學大師)를 시켜 이곳의 지리를 살피게 하였다. 무학대사가 내려와 진주성에서 대봉산(大鳳山) 쪽을 바라보니 천하의 명당 자리였다. 대봉산은 “큰 봉황새가 사는 뫼”란 뜻인데, 무학대사는 이 산이 있기 때문에 진주에서 인물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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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 오방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하륜의 시문집 책판. 하륜(河崙)의 후손인 용와(容窩) 하진현(河晉賢)이 찬술한 『호정집(浩亭集)』 발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아아, 후손이 없고 병란을 여러 차례 겪어서 남기신 문집이 흩어져 전해지지 않는다. 족인 하진달(河鎭達)이 사방으로 수소문하고 널리 찾아다녀서 비로소 초고를 만들었다. 또 족인 하속(河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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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이후 확립된 군현제도에 의하여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는 치소가 있는 진주의 도시적 구역. 읍치(邑治)란 고려시대 이후 확립된 군현제도에 의하여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는 치소(治所)가 있는 도시적 구역으로, 흔히‘읍(邑)’혹은‘읍내(邑內)’라고 부르는 곳이다. 『삼국사기』지리지(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양지(晋陽誌)』 등에 기록된 건치연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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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씨와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어 모여 사는 마을. 진주는 신라시대 구주의 하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항상 영남의 계수관으로 그 위치를 지켜왔으며 토성세력도 강성하였다. 진주의 성씨는 정(鄭), 하(河), 강(姜), 류(柳), 소(蘇), 임(任), 강(康), 김(金), 박(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목(晉州牧) 조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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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화순. 자는 적원(積元). 아버지는 병조좌랑을 지낸 최세준(崔世俊)이고, 어머니는 평해손씨(平海孫氏)로 현감을 지낸 손준(孫濬)의 딸이다.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의 아우이다. 부인은 정몽상(鄭夢祥)의 딸이다. 1575년(선조 8) 한양에서 형 수우당 최영경과 함께 선대의 토지가 있는 진주로 와서 도동에서 한집에 같이 살면서 섬기기를 부모같이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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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순흥부사를 지낸 하윤린(河允潾)이다. 1347년(충목왕 3)에 태어나 1365년(공민왕 14) 문과에 급제한 후 1367년 감찰규정이 되어 신돈(辛旽) 문객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좌천되었고, 1388년(우왕 14)에는 최영(崔瑩)의 요동정벌을 반대하여 양주로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