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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용휴(用休). 좌찬성을 지낸 강희맹(姜希孟)의 아들이다. 1450년(세종 32)에 태어나 1479년(성종 10)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사재감정, 좌통례를 거쳐 1485년 상주목사가 되었다. 이어서 판결사·부제학·도승지를 거쳐 1497(연산군 3)에 경기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김일손(金馹孫) 등을 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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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1642년(인조 20년)부터 1643년까지 진주목사로 재직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1「임관조(任官條)」에는 진주목사로 있는 동안 고을의 선생안(先生案)을 닦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대수가 진주목사로 부임해 있을 당시, 그의 덕행과 선정을 기념하여 선정비가 세워졌다. 비의 제목은 "목사강후대수청덕선정비(牧使姜侯大遂淸德善政碑)"로,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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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중(汝中), 호는 매촌(梅村). 호조참의에 추증된 임계(臨溪) 강심(姜深)의 아들이다. 1560년(명종 27)에 출생하여 1627년(인조 5)에 별세한 무인으로, 일찍이 무예를 익혀 같은 시대에 무인으로 활약한 정기룡(鄭起龍)·주몽룡(朱夢龍)과 함께 ‘3룡(三龍)’으로 불렸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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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자장(子章). 아버지는 지창녕현사(知昌寧縣事) 강우덕(姜友德)이며, 어머니는 지보주사(知甫州事) 이혜(李惠)의 딸 재령이씨이다. 1410년(태종 10) 태어나 1429년(세종 11)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의 벼슬을 두루 거치고 1448년 지승정원사, 1452년(문종 2)에 도승지를 지냈다. 1453년(단종 1) 이조참판으로 있으면서 계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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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장군. 본관은 진주(晋州). 목종(穆宗)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지기(志氣)가 있고 강하고 과감하여 주로 전공을 통하여 입신하였다. 1021년에 생을 마쳤다. 1012년(현종 3) 5월에 안찰사(按察使)로서 영일(迎日)·청하(淸河)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東女眞)을 도부서(都部署)의 문연(文演)·이인택(李仁澤)·조자기(曺子奇)와 함께 격퇴하였다. 1016년 내사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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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자명(子明), 호는 완역재(玩易齋). 정당문학 강회백(姜淮伯)의 아들이며 강희안(姜希顔)과 강희맹(姜希孟)의 아버지이다. 1395년(태조 4) 태어나 태종 초에 음보(蔭補)로 계성전직(啓聖殿直)이 되었다. 1416년(태종 16) 공조좌랑으로 있을 때, 천추사(千秋使)가 중국에 가지고 간 무역품 가운데 공조에서 납품한 은이 가짜로 밝혀져 파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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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경장(景章), 호는 수헌(守軒). 강우덕(姜友德)의 아들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교훈을 받아 호사함을 버리고 글 읽기에 열중하니 이미 대의를 통달했다. 강숙경은 어린 나이에 밀양부사가 되었으나 고을을 다스림에 있어 위엄과 은혜로 보살피니 간악함과 교활함이 없어지고 한 고을이 평온하였다고 한다.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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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시호는 공목(恭穆).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강군보(姜君寶)이고, 어머니는 전객시령(典客寺令) 여진(呂珍)의 딸이다. 아들 강회계(姜淮季)는 공양왕의 부마가 되었다. 1357년(공민왕 6) 성균관시(成均館試)에 급제하고, 1362년 대관서승(大官署丞)이 되었다. 이후 전공좌랑(典工佐郞)·합문인진부사(閤門引進副使)를 거쳐, 전법(典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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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목사 강천(姜闡)의 후예로, 아우는 강척(姜惕)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아우 강척과 더불어 문행이 있었다. 회림정(徊臨亭)을 세우고 아우 강척과 함께 학문에 진력하여 당시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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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규지(奎之). 아버지는 학생(學生) 강막대(姜莫大)이다. 1528년(중종 23)에 진사시에 3등으로 합격하였다. 일찍부터 문명이 있었고, 고을 사람 진사(進士) 유백온(兪伯溫), 진사(進士) 윤령(尹寧)과 더불어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성균관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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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대림(大臨), 호는 성재(誠齋).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강관(姜琯)이며, 어머니는 곡부공씨(曲阜孔氏)이다. 1495년(연산군 1)에 출생하여 1532년(중종 27) 37세의 나이로 늦게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그 이듬해 예문관에 들어갔다. 1541년부터 성균관전적과 사헌부지평을 역임하였고, 1544년에는 지평으로 있으면서 경연(經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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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박사 강계용(姜啓庸)의 아들로, 감찰어사를 지낸 강사첨(姜師瞻)의 아버지이며, 문하시중을 지낸 강창귀(姜昌貴)의 할아버지이다. 『진양지(晋陽誌)』에 의하면, 아버지 강계용과 함께 유학으로 이름을 날렸다. 일찍이 아버지 강계용이 서장관으로 일본에 갈 때 따라갔다 왔으며, 뒤에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할 때 또 서장관이 되어 다녀와서는 자손에게 경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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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따르면 문과에 장원하여 두 번이나 승지가 되고 벼슬이 전라도 관찰사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우 강자순(姜子順)은 옹주에게 장가들어 반성위(班城尉)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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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참의(叅議: 조선시대의 정3품직)를 지낸 강우(姜佑)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한 자질이 있어서 지방 사람들이 유림의 재목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자라서는 글 솜씨와 행동거지로 널리 명성을 떨쳤다. 당대에 높은 학문적 식견으로 이름을 날리던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이 영특하고 곧으며 빼어난 인재라고 하면서 경탄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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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벼슬을 여러 번 옮겨서 한림원의 직한림까지 올랐다. 어려서부터 진주향교에서 글을 읽었는데 남달리 학문이 뛰어나 글을 잘 지으니 한강 이남의 학동 중에서는 제일이라 하였다. 1212년(강종 1) 봄에 과거에 응시하려 하였을 때 갑자기 아버지가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관원에게 호소하여 방면해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관원은 허락하지 아니하고 “네가 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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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조선 초기의 문신인 수헌(守軒) 강숙경(姜叔卿)[1428~1481]의 후손이다. 출사 관련 구체적인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진양속지』에 임진왜란 시 예빈주부(禮賓注簿, 조선시대 정6품 관직)로 선조의 의주 몽진(蒙塵)에 함께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공으로 원종공신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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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형지(詗之). 아버지는 승지와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강자평(姜子平)이다. 1490년(성종 21)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그 해에 정언으로 등용되고 이듬해 지평이 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장령이 되고 그 뒤 승진을 계속하여 1504년에는 대사간에 올랐다. 그러나 같은 해 일어난 갑자사화 때 연산군이 생모인 폐비 윤씨를 왕후로 복위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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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호(士浩), 호는 목계(木溪)·동고(東皐). 강우덕(姜友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집의(執議) 강숙경(姜叔卿)이고, 아버지는 정략장군(政略將軍) 강인범(姜仁範)이다. 어머니는 성주인(星州人) 여씨(呂氏)로 호군(護軍) 여인보(呂仁甫)의 딸이다. 부인은 삭령최씨로 예조참판(禮曹參判) 웅(雄)의 딸이다. 강혼(姜渾)은 연산군과 중종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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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한림(翰林: 예문관 검열) 강흘(姜仡)의 5대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전투 때 도순성장(都巡城將)의 직책을 맡아 진주성을 지키던 황진(黃進)의 부장으로서 빛나는 공을 세우고 순절하였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올랐으며, 그 공으로 인해 자손들은 대대로 충순위(忠順衛)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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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백부(伯父), 호는 통정(通亭). 할아버지는 중대광(重大匡) 강군보(姜君寶)이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강시(姜蓍)의 아들이다. 강종덕(姜宗德), 강우덕(姜友德), 강석덕(姜碩德), 강순덕(姜順德)을 아들로 두었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좨주[成均祭酒]가 되었으며, 밀직사의 제학·부사·첨서사사(簽書司事)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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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의 아들이며, 조선 전기 문신 강희안(姜希顔)의 동생이다. 1424년(세종 6) 태어나 1447년(세종 29)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종부시주부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1450년 예조좌랑에 이어 돈령부판관을 역임하였고, 1453년(단종 1) 예조정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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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충신. 본관은 진주(晋州).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문신인 강회백(姜淮伯)[1357~1402]의 후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아들인 강기원(姜起源)과 더불어 임진왜란에 참가하여 전공(戰功)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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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우경(愚景)·경덕(景德), 호는 인재(仁齋).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의 아들이고 좌찬성을 지낸 강희맹(姜希孟)의 형이다. 1417년(태종 17)에 태어나 1441년(세종 23)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돈녕부주부(敦寧府主簿)가 되었다. 1443년(세종 25) 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훈민정음 28자에 대한 해석을 상세하게 덧붙였으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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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신란(戊申亂) 때의 의병.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주백(周伯). 수헌 강숙경(姜叔卿)의 후손이다. 용력이 뛰어났다. 1728년(영조 4)에 무신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곤양군수 우하형(禹夏亨)을 도와 적들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후에 양무공신에 오르고 절충장군이 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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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황해도관찰사 곽월(郭越)의 아들이고, 남명 조식(曺植)의 외손이다.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왕의 뜻에 맞지 않는 글귀 때문에 파방(罷榜)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황해도 의주(義州)로 피난하자, 경상남도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 5월 경상남도 함안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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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울주(蔚州). 자는 성원(聲遠), 호는 백암(白巖). 찰방 김추(金樞)의 아들이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558년(명종 13) 생원이 되고, 1570년 식년문과 갑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도사(都事)를 거쳐 풍기군수를 지냈다. 재능과 학식이 뛰어나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벼슬을 내놓고 향리에 돌아가서 날마다 시골 자제들과 더불어 강학하며 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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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 안동 출신이다. 아버지는 김진(金璡)이고, 동생은 김복일(金復一)이다. 1556년(명종 11)에 아우 김복일과 함께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1564년에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586년 나주 사직단(社稷壇)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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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면오(勉吾). 목천(木川) 출생으로 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에 입사하였으며, 1581년에는 부평부사가 되었으나 구황(救荒)에 전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583년 이탕개(尼湯介)의 난 때 도순찰사 정언신(鄭彦信)의 막하 장수로 출정하여 공을 세웠다. 그 뒤 훈련원판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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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의 무관·병법가·천문가. 금관가야(金官加耶) 왕족의 후손, 김유신(金庾信)의 적손(嫡孫)인 김윤중(金允中)의 서손(庶孫)이다. 김암은 본래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며, 술법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였고, 천문학과 병법에 밝았으며, 지방관으로서 여러 차례에 걸쳐 지역을 맡아 잘 다스렸다. 또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김암이 젊은 시절에 중국 당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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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진양속지(晋陽續誌)』권1「임관조(任官條)」에 따르면, 1877년(고종 14)부터 1878년까지 진주목사로 부임하였다. 구휼미 1천4백6십여 석과 소금 1백5십여 석을 창고에서 덜어내어 기민을 구제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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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추백(秋佰), 호는 노주(蘆洲). 아버지는 김단(金鍴)이며, 후에 김곤(金錕)에게 입양되었다. 1660년(현종 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장령, 헌납, 문학, 보덕을 차례로 역임하였고, 1694년 사간으로 있을 때 서인인 한중혁(韓重爀) 등이 폐비 민씨의 복위를 도모하자 이들을 탄핵하였다. 후에 숙종이 민씨의 폐위를 후회하게 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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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1671년(현종 12)에 진주목사로 부임하여 1673년까지 재직하였으며, 벽오당(碧梧堂), 조양각(朝陽閣), 의곡사(義谷寺) 등을 세웠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1「임관조(任官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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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字)는 중준(仲遵), 호는 이계(伊溪). 아버지는 신촌(新村) 남해준(南海準)[1598~1667]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 권지(權誌)의 딸이다. 처는 아주신씨(鵝州申氏)로 신지의(申之義)의 딸이다. 효종과 숙종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다. 1620년(광해군 12)에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동 월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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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의병.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행원(行遠), 호는 능허(凌虛). 1566년(명종 21)에 태어나 정구(鄭逑)에게서 『대학(大學)』과 『심경(心經)』을 배웠다. 당시의 권세가였던 정인홍(鄭仁弘)을 만나보고 스승인 정구에게 정인홍을 멀리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모두 그의 말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를 못마땅히 여기게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이원익(李元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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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진주목의 판관으로 있으면서 1593년 진주성전투로 진주성이 함락될 때 전사했다. 1743년(영조 19)에 병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경상남도 진주 창렬사(彰烈祠)에 배향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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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오원(吾元). 변남룡(卞南龍)의 5대손이다. 1538년(중종 33) 출생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전사할 때까지 대의를 위하여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 일찍이 변훈남(邊勳男)에게서 수학하였는데, 학문뿐만 아니라 무예에도 능하여서 활쏘기와 말타기를 연마한 뒤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주부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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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당시 명사로 이름을 날린 서인원(徐仁元)의 동생이다. 출생연도는 미상이며,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전투 때 진주목사로 있으면서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숲속으로 도망쳐 있다가 살해당하였다. 본래 힘은 세었지만 어리석고 겁이 많아 무장으로서 별다른 전공을 세우지 못하고 일생을 마쳤다. 그러나 그의 형 서인원이 당시 존경받던 명사였기 때문에 그 덕으로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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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내순(乃純), 호는 공금당(共衾堂). 성성재(惺惺齋) 성황(成鎤)의 후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의하면, 성동일은 벼슬에 오르기 전에 부모상을 당하자 예를 갖춰 장례를 지냈고, 성품이 효성스러워 계모를 잘 모셨다. 벼슬에 올라서는 엄중하게 처리하니 당시의 사람들이 공황(龔黃)[중국 한나라 공과 황 두 사람]에게 견주었다.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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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직제학을 지낸 성사재(成思齋)의 6대손이며, 성흔(成忻)의 아들이다. 출생연도는 미상이며 음서로 진주판관에 임명되었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전사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에게 진주판관으로 발탁되어 군무를 맡아 성벽을 개수하고 무기를 수선하는 등 전비를 갖춘 후 격문을 붙여 충의지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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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덕여(德輿). 아버지는 성우(成祐)이고, 어머니는 진주강씨로 강소산(姜小山)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성자량(成自諒), 증조할아버지는 성만용(成萬庸)이다. 부인은 진주하씨로 하충(河漴)의 딸이다. 1469년(예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92년(성종 2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이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 조선시대의 종5품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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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공실(公實), 호는 부사(浮査, 桴楂)·야로(野老). 우윤을 지낸 성두년(成斗年)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충절을 지킨 성여충(成汝忠)과 성여효(成汝孝)가 그의 형이다. 1546년(명종 1) 출생하여 1632년(인조 10) 86세로 별세하였다.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문명을 떨치다가 1609년(광해군 1) 63세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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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언겸(彦謙). 아버지는 생원(生員)인 오곡(梧谷) 손수령(孫壽齡)이고, 어머니는 진주하씨로 김해부사(金海府使)를 지낸 하경리(河敬履)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사헌감찰(司憲監察) 손억(孫億)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의령현감(宜寧縣監)을 지낸 손약수(孫若水)이다. 1438년(세종 20)에 태어나 진주 이하리(離下里)에 살았다. 음서로 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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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고령. 자는 군흡(君洽). 신숙주(申叔舟)의 증손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따르면 사람됨이 평안하고 조용하며 스스로 지키어 명리를 구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따로 서당을 지어 후진들을 가르치는데 힘썼으며 날마다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어 스스로 즐겼다 한다. 진주 조동(槽洞)에 살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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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충신. 본관은 순흥(順興). 일사재(一思齋) 안창렴(安昌廉)의 증손이며, 안흥종(安興琮)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당시 벼슬이 낮은 직급의 봉사(奉事)였으나,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나라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충무공 이순신의 휘하에 들어가 많은 공을 세우고 이듬해 노량해전에서 장렬히 최후를 마쳤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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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종(咸從). 자(字)는 자유(子游), 호는 관포(灌圃)·혼돈산인(渾沌山人). 아버지는 훈도(訓導)를 지낸 어문손(魚文孫)이다. 할아버지는 별장(別將) 어효원(魚孝源), 증조할아버지는 교도(敎導) 어변질(魚變質)이다. 처는 진주강씨 강인범(姜仁範)의 딸과, 나빈(羅彬)의 딸인 나주나씨가 있다. 1470년(성종 1)에 태어났다. 1492년에 진사시에 합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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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형보(瑩甫), 호는 성산(聖山). 이조판서 오팽숙(吳膨叔)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오사운(吳思雲)이다. 1547년(명종 2)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죽었다. 1590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고 홍문관 정자(正字)에 등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 휘하의 의병으로 금산전투에서 활약하였다. 15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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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예빈경을 지낸 왕유(王惟)의 아들이다. 젊어서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승진하여 감찰어사가 되어 원칙대로 법을 집행하여 칭송을 받았다. 뒤에 진주부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며, 동경유수(東京留守)가 되어 경주로 전임하게 되었으나 진주 백성들의 청으로 1년을 더 유임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백하였을 뿐 아니라 절도가 있었으므로 모든 일을 백성에게 이롭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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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추보(樞甫)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따르면, 1540년(중종 35)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46년에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군수에 이르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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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태승(泰升), 호는 하곡(霞谷).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윤휘(尹暉)이고, 아버지는 첨정 윤면지(尹勉之)이다. 어머니는 참판 경섬(慶暹)의 딸이다. 1650년(효종 1)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承文院)에 들어갔다. 1665년 전적·감찰·예조좌랑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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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인숙(寅淑). 재예가 탁월하여 여러 번 식년과에 응시했으나 결국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후에 경기전(慶基殿) 참봉으로 제수되었다. 평소에 술을 즐겨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서울에도 집이 있어 중요 기관에 아는 이가 많았으나 높은 벼슬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또한 네 명의 형제들과 더불어 서로 화목하니 당시 사람들이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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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직경(直卿). 문음으로 옥과(玉果) 현감에 제수되었다. 집에 있을 때에도 예로써 몸을 단정히 하였고, 자제들이 허물이 있으면 성년이 되어서도 매를 들었다. 향인과 더불어 술자리를 가지더라도 흐트러짐이 없고, 의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듣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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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진지(鎭之). 군수를 지낸 이호약(李好約)의 아들이다. 1557년(명종 12) 출생하여 1608년(선조 41) 51세로 별세할 때까지 무인으로 활약하였으며, 특히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웠다. 1584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1592년 곤양군수가 되었는데, 때마침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영남 일대에 침입해오자 선봉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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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여중(汝重), 호는 월암(月菴). 성재(誠齋) 이예훈(李禮勛)의 후예이다. 이갈암(李葛庵)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1699년(숙종 25) 기묘년에 문과에 올라 사헌부 등에서 관직생활을 하며 명성을 얻었다. 만년에 진주 월아산 아래에 있는 동산에 정사를 세우고 편액을 ‘월암(月菴)’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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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조선 전기의 문신인 이인형(李仁亨)의 아들이다. 1519년(중종 14) 현량과(賢良科)에 올라 벼슬이 승문원 정자에 이르렀다. 진주 가좌촌에 살았다고 하며,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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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치백(致伯), 호는 안호(安湖). 정종의 열째아들 덕천군(德泉君)의 13대손이며, 이집(李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기항(李基恒)이고, 아버지는 이완길(李完吉)이며, 어머니는 박세현(朴世炫)의 딸이다. 경상도 진주 출생으로, 1838년(헌종 4) 문과에 급제하여 승무원 부정자가 된 이후 휘릉(徽陵) 별검,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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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재령. 자는 사영(士英), 호는 남계(南溪). 아버지는 이희만이다. 어릴 때부터 큰 뜻을 품고 강개하고 대범한 면모를 갖추었더니 1592년 임진왜란 때 아우인 이분, 종제인 이홍훈과 더불어 곽재우를 따라 화왕산성에 들어가 왜적에 대항하였다. 또, 이순신을 따라 바다에서 싸워 군공을 세웠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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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남계(南溪) 이번(李蕃)의 아우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이번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망우당 곽재우(郭再祐)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많은 공을 세우고 화왕산성(火旺山城) 수호에 최선을 다했다. 후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휘하에서도 많은 공을 세웠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번과 함께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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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여휴(汝休), 호는 용암(龍巖). 승지 이유번(李有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이석명(李碩明)이다. 아버지는 현령 이민선(李敏善)이며, 어머니는 김봉(金崶)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618년(광해군 10)에 아버지를 따라 경상도 선산으로 낙향하였다. 인조반정 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0년(인조 8) 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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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재령.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계(淸溪). 증조할아버지는 이중광, 할아버지는 이현재, 아버지는 이명규이다. 1681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여 영조 병오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좌랑에 올랐다.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향리인 진주에서 뜻있는 학우들과 학문을 연마하고 제자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특히 향약을 수립하는 등 미풍양속을 선양하는데 심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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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純祖)[1790~1834] 대의 진주 목사(牧使). 1801년에서 1802년 사이 진주목사로 재직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1「임관조(任官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순조 2년 6월 17일 (병진) 기록에는, 경상우도 암행어사가 이노수 등의 잘못 다스린 정상을 서계하다”는 내용과 관련하여, ‘경상우도 암행어사 정만석(鄭晩錫)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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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안. 자는 공부(公夫), 호는 매헌(梅軒). 아버지는 대사성을 지낸 이미(李美)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로 강비호(姜匪虎)의 딸이다. 1436년(세종 18) 태어나 15세부터 문명이 널리 알려졌으며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배웠다. 1455년(세조 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젊은 나이에 출사하는 것은 교만한 성품을 기른다고 하면서 집에서 문을 닫고 독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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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 정철(鄭澈)의 막료로 있었는데, 적개의병장(敵愾義兵將) 변사정(邊士貞)이 그의 현명함을 듣고 청하자 부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나이가 너무 어려 부하들이 잘 따르지 않았으나, 신상필벌(信賞必罰)을 강화하고 사졸과 고락을 함께 하니 사람들이 점차 이에 복종하였다. 1593년 진주성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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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여함(汝涵). 이경성(李景成)의 아들이다.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의령현감으로서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김응서(金應瑞)와 함께 의령에 침입한 나베시마 휘하의 왜군을 격파하였으며, 1602년 상주목사 뒤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함안군수 유숭인(柳崇仁)의 휘하에서 소모관(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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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강이(剛而), 호는 구암(龜巖). 이담(李湛)의 아들이다. 1536년(중종31) 진사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에 보임되었다. 다음해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예조정랑을 거친 뒤 연로한 부모 봉양을 위해 경상도 선산부사로 나갔다가 1552년(명종7) 사성, 이듬해 청주목사를 지냈다. 이때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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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몽응(夢應), 호는 청강(淸江). 병마사 이문성(李文誠)의 아들이며, 영의정 상진(尙震)의 손자사위이다. 명종~선조 조에 벼슬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7세 때 시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합격, 이어서 1564년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권지정자에 보임되었다. 이어서 예문관검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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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인언(仁彦)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용감하고 호협하여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1583년(선조 16) 북도병마사 휘하의 군관이 되어 이제신(李濟臣)의 반란을 평정했고, 야인정벌에 공을 세웠다. 1593년 4월 왜군이 진주성을 공격하자, 경상우병사 김성일(金誠一)의 아장(牙將)이 되어 선봉에서 적장을 사살하여 적을 퇴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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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수(子修), 호는 신암(新菴). 참봉을 지낸 이공량(李公亮)의 아들이며, 영남의 대학자인 조식(曺植)은 그의 외숙이다. 1524년(중종 19)에 태어나 1549년(명종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에 제수되었다. 1554년 사간원 정언이 되었고, 이후 홍문관수찬사헌부지평 등 청요직에 있으면서 당시의 권신 윤원형(尹元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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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재령. 자는 경휘(景輝), 호는 행와(杏窩). 할아버지는 이간, 아버지는 이유성이다. 이중광(李重光)은 그의 아우이다. 어머니 이씨부인은 현모양처로 『진양지(晋陽誌)』에 그 행실이 잘 나타나 있다.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 아래서 성장하며, 성실하게 학문을 익히고 실천하였다. 유일(遺逸: 재야의 어진 선비)로 천거되어 재랑(齋郞)을 제수 받고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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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재령. 아버지는 이덕관이다. 영조 대 무과급제이후 전중시어사, 사헌부 감찰, 웅천군수, 기장군수 등의 관직을 거쳤다. 부임하는 지역마다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신망을 받았다. 그의 행장에는 ‘임기가 되어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하자 백성들이 길을 막고 머물기를 원함’이라고 쓰여 있어 지방관으로서 모범적인 면모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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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자무(子武). 이구암(李龜岩)의 손자이며, 이응인(李應寅)의 아들이다. 기질이 순미하고 천성이 효우스러웠으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생원과 진사를 함께 합격하였다. 할아버지가 종기를 앓아 병세가 매우 위중해지자 이호변이 항상 입으로 그 농즙(濃汁)을 빨아서 종기를 낳게 하였다.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응분의 보상을 받지 못하니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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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재령. 자는 백건(伯建). 할아버지는 이종이고, 아버지는 이희억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가동(家僮)을 거느리고 화왕산성 진지로 달려가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에 제수되어 왜적에 대항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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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목천(木川). 자는 명보(明甫). 아버지는 선전관 장응익(張應翼)이다. 성품이 강직하고 키는 팔 척이며, 특히 힘이 뛰어났다. 평소 유학에 뜻을 두어 경사자집(經史子集)에 통달하였다. 여러 번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자 활쏘기와 말 타기에 전념,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여 북도 변장을 제수받았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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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의 수문장을 지냈으며, 이듬해 계사년에 진주성전투에서 최후를 맞았다. 1743년(영조 19)에 호조좌랑으로 추증되었으며, 경상남도 진주 창렬사(彰烈祠)에 제향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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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인.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은철(殷喆), 호는 퇴암(退庵). 진사(進士) 정광룡(鄭光龍)의 아들이다. 진주 용암에 살았다. 『증보 진양속지(增補 晋陽續誌)』에 "어버이를 섬김에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일찍이 들로 가다가 고인(雇人)이 피를 뽑는 것을 보고 돌아와서 정계교에 말하기를 "고인이 벼를 뽑고 있었다"고 하므로 정계교가 "벼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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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군일(君一). 군수 정만생(鄭晩生)의 아들이다. 정계남(鄭癸男)은 일찍이 무과에 올라 벼슬은 사과(司果)에 올랐다. 인조반정(1623)에 참여하였고 이듬해 이괄의 난에서 무훈을 떨쳤다. 인조반정 때의 공으로 정사공신이 되었으며 이괄의 난 때 세운 무공으로 다시 진무공신이 되고 은결(恩結)을 지급받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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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곤양.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진주정씨에서 분적한 곤양정씨(昆陽鄭氏)의 중시조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정호(鄭浩)의 아들이다. 초명은 무수(茂壽)이나 1586년(선조 19) 무과 급제 후 왕명에 따라 기룡으로 이름을 고쳤다. 1562년(명종 17) 출생하여 1622년(광해군 14) 60세로 별세하였다. 무과에 급제한 후 1590년 경상우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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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성익(聖翼), 호는 학주(鶴洲).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의 후손이다. 진주 가곡 출신이다. 1890년(고종 27)에 문과에 올라 승지(承旨)가 되었다. 『증보 진양속지(增補 晋陽續誌)』에 의하면, 풍채가 수미(秀美)하고 문학이 넉넉하고 풍족하여 향당(鄕黨)에서 이를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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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 자는 학여(鶴如). 군일 정계남(鄭癸男)의 아들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선전관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할 때 선전관으로서 임금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의 동문을 지키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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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숙성(叔成). 호는 삼계(三溪). 훈도 정관(鄭寬)의 아우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 에 의하면, 1543년(중종 38)에 진사가 되고,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올랐다. 천성이 정성스럽고 고졸하여 벼슬에 나아가서는 청렴하여 관원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따랐고, 백성들은 공경하였다. 세 고을에 부임하였으나 추워도 앉을 방석이 없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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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 자는 자유(子), 호는 애일당(愛日堂). 할아버지는 정신중(鄭臣重)이고, 문정공(文定公) 정이오(鄭以吾)의 아들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에 나가 경승부승(敬丞府丞)에 이르렀고, 1416년(태종 16)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이조좌랑·승문원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422(세종 4)년부터 1438년까지 사간원헌납, 함길도경차관, 승정원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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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음(湖陰)이다. 부사 정광보(鄭光輔)의 아들이며,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조카이다. 1507년(중종 2)에 진사가 되고, 1509년(중종 4)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514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고, 1516년 황해도도사로서 문과중시에 장원하였으며 사간을 거쳐 1523년 부제학이 되었다. 1534년 동지사(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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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이신(而信). 대제학을 지낸 정척(鄭陟)의 아들이다. 출생년은 미상이다. 1474년(성종 5)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1475년(성종 6)에는 홍문관부응교로서 전라도에 파견되어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살폈다. 1479년 수찬으로 경연관(經筵官)을 겸하였다. 그 뒤 해주목사와 경기도경차관, 우부승지를 거쳐 좌부승지에 이르렀는데, 이때 해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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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진주 출신. 호는 우곡(偶谷). 정승을 지낸 정석(鄭碩)의 아들이다.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청맹(靑盲 : 겉은 멀쩡하나 실제는 눈이 안 보임)을 앓는다고 핑계대고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으로 들어갔다가 말년에는 진주 사봉면 사곡리에 우곡정(隅谷亭)을 짓고 은거하였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가 여러 번 초빙하였으나 응하지 않으므로 신하를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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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무신.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의하면, 훈련원 주부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1593년(선조 26) 진주성전투에 참전하여 전사했다. 1743년(영조 19)에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되었으며,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창렬사(彰烈祠)에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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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형중(亨重), 호는 황계(篁溪). 용모가 수려하고 예의를 잘 지켰으며, 성재(性齋) 허전(許傳)에게 사사(師事)하였다. 1891년(고종 28)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에 이르렀으며, 시랑 한기동(韓耆東)과 함께 좋은 친구로 사귀었다. 1894년 갑오개혁 후 단발령이 내려지자 낙향하여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생을 마쳤다. 『진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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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사과(司果) 정형손(鄭亨孫)의 아들이며, 정항(鄭沆)의 아버지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진주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활쏘기를 비롯한 무술에 뛰어났고 명장의 풍모가 있었다. 1489년(성종 20)에 무과에 합격한 후 함경도 군관을 거쳐 우도수사(右道水使)에 올랐다. 1509년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듬해 삼포왜란이 일어나 웅천(熊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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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호는 면재(勉齋). 평장사를 지낸 정연(鄭椽)의 아들이다. 1320년(충숙왕 7) 국자시에 합격하여 1345년(충목왕 1) 정당문학이 된 후 국정에 참여하였으며, 이어 청천군(菁川君)에 봉해졌다. 1352년(공민왕 1) 당시의 권세가 조일신(趙日新) 세력의 배경으로 찬성사가 되었으나 곧 조일신이 주살되자 그 일파가 함께 투옥되었다가 광양군수로 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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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수가(粹可), 호는 교은(郊隱)·우곡(愚谷). 찬성사 정신중(鄭臣重)의 아들이다.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하여, 1376년(우왕 2) 예문관검열이 된 뒤, 삼사도사, 공조·예조의 정랑, 전교부령(典校副令) 등을 역임하였다. 1394년(태조 3) 지선주사(知善州事)가 되었고, 1398년 봉상시소경(奉常寺少卿)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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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晋陽). 영조 대 무신란(戊申亂)에서의 공으로 분무원종공신(奮武原從功臣)에 기록되고 가선동지중추부사(嘉善同知中樞府事)를 추증 받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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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제옹(濟翁).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정척(鄭陟)의 손자이고, 조선 전기 진주 출신의 문신인 정성근(鄭誠謹)의 아들이다. 1472년(성종 3)에 태어나 1501년(연산군 7) 문과급제한 후 승문원 부정자·박사를 지냈다. 일찍이 그 아버지의 성품이 강직하여 연산군의 귀에 거슬리는 간언을 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께 물러날 것을 진언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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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 자는 명지(明之), 호는 정암(整菴)·창재(暢齋). 아버지는 증호조판서 정설(鄭舌)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晋州姜氏)로 산원(散員) 강우(姜祐)의 딸이다. 1408년(태종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41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정자가 되었다. 세종대에서 세조대에 걸쳐 지승문원사,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공조·호조·예조의 참의, 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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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순오(舜五), 호는 수졸(守拙). 정광익(鄭匡翼)의 아들이다. 성품이 순후하고 식견이 발랐으며 조행과 실천이 고아하고 부지런하였다. 선공감역(繕工監役)을 지냈다. 진주 문암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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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보여(保汝), 호는 박원(璞園). 정기화(鄭琦和)의 아들로 1817년에 태어났다. 1867년 진주목사(晋州牧使)로 부임하여 1870년까지 활동하였다. 의기사를 중건하였으며, 교방기구(敎坊機具)를 재설치하고, 의암별제(義巖別祭)를 신설하였다. 1870년에 김해부사로 전임되어 갔다. 문장명필(文章名筆)을 겸비한 선비로서 음악에 대한 관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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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용인(勇仁)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사용(司勇)에 올랐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 서궁(西宮) 유폐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때 임금 앞에서 폐서인을 지지하는 회의가 있었다. 정호신은 태연히 그 회의의 참석을 기피하였는데 부도덕한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던 충의가 인정되어 정청불참자록(廷請不參者錄)에 이름이 실렸다. 『진양속지(晋陽續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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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무신. 자는 학연(學然), 호는 만초(晩樵). 정철기(鄭喆基)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도량이 넓고 마음씨가 의연하였다. 어릴 적 무과에 올라 장위영참군(壯衛營參軍)에 기용되었다가 얼마 후에 시종원우시어(侍從院右試御)에 올랐다. 왕의 호위 임무를 맡으면서 왜병의 범궐(犯闕)이 있었을 때 선전관 윤영선(尹映宣)과 함께 칼을 차고 바로 궐 아래로 달려가 임무를 완수하여 신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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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함안. 자는 준여(竣汝). 생육신의 한 사람인 정절공(貞節公)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5세손이다.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한 후 금군위(禁軍衛)와 고성 참군(參軍)을 거쳐 방위장(防衛將)이 되었다. 방위장(防衛將)으로 있을 때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터지자 죽음으로써 보국하기를 맹세하였고 정유재란 때에는 진주 반성(班城)에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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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 자는 문위(文偉). 현령을 지낸 조안중(曺顔仲)의 아들이다. 1434년(세종 16)에 태어나 1475년(성종 6) 문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에 발탁되었다. 1478년 이조좌랑에 재직 중 평안도에 파견되어 민심을 회유하였다. 1479년 건주위(建州衛) 여진을 정벌할 때 도원수 윤필상(尹弼商)의 종사관이 되어 참전하였고, 이듬해 적진 깊숙이 들어가 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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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창녕. 할아버지는 울진현령 조안중(曺顔中)이고, 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조숙기(曺淑沂)이다. 어머니는 정유의(鄭攸宜)의 딸이다. 진주 송곡리에 살았다. 1502년(연산군 8) 무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선전관이 되었다. 1506년 유빈(柳濱)·윤상로(尹漡老) 등과 협의하여 연산군을 폐하려 하였으나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의 반정이 먼저 성공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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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뒤 1592년(선조 25) 고성현령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맞았다. 왜군이 진주성을 포위, 공격해오자 목사 김시민(金時敏)을 중심으로 왜적에 대항하였다. 이 때 조응도는 고성의 가장(假將)으로서 진주 복병장(伏兵將) 권유경(權惟敬)과 함께 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남쪽 문을 지켰다. 십자(十字) 횃불을 들고 남강(南江) 밖 재 위에 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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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 아버지는 참봉 조언(趙堰)이며, 어머니는 대사성 강로(姜老)의 딸이다. 진주 소남리에 살았다. 1537년(중종 32) 태어나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합격한 뒤 천거로 안기도찰방(安奇道察訪)이 되었다. 그 뒤 사도시직장(司䆃寺直長)·상서원직장(尙瑞院直長)·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장례원사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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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백부(伯符), 호는 지족(知足). 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조찬(趙瓚)이며, 어머니는 생원 정참(鄭參)의 딸이다. 1454년(단종 2) 태어나 1474년(성종 5) 생원시에서 1등으로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면서, 권지승문원정자에 제수되었다. 이후 1478년에는 통신사 이계동(李季仝)의 군관(軍官)이 되어 일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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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1887년부터 1889년까지 진주목사를 지냈다. 부임해 있는 동안 연계재(蓮桂齋)를 이건하고 유정당(惟政當)과 함옥헌(涵玉軒)을 중수하였다. 또한 포락(浦落)에서 억울하게 징수한 세금 5백결을 경감하고 환전을 탕감하여 관에서 비축금을 갖추도록 하였다. 1889년부터 1890년까지 다시 진주목사로 부임하였으며 전운어사(轉運御史)를 겸하여 탈미(脫米)의 장선비(裝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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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신안(新安). 무열공(武烈公) 주몽용(朱夢龍)의 아들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터지자 크게 공을 세워 진무공신이 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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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낙이(樂而). 아버지는 진사 진복명(陳福命), 어머니는 판중추부사를 지낸 황진(黃璡)의 딸이다. 또 문인으로 이름을 떨친 진우(陳宇)가 그의 형이다. 1519년(중종 14) 출생하여 1568년(선조 1) 49세로 별세하였다. 1547년(명종 2) 알성문과에 합격하여 검열·대교·정언·이조정랑·병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560년 형조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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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字)는 대재(大哉). 할아버지는 대사간(大司諫) 최복린(崔卜麟)이고, 아버지는 함안군수(咸安郡守)를 지낸 최도원(崔道源)이다.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판서운관(判書雲觀) 김선보(金善保)의 딸 서흥김씨(瑞興金氏)이다. 부인은 숙인(淑人) 곡산우씨(谷山禹氏) 현감(縣監) 우정(禹定)의 딸이다. 1428년에 태어났다. 1456년 무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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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호연(浩然).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령최씨 후손이다. 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최복린(崔卜麟)이고, 어머니는 숙부인 사천강씨(泗川姜氏)이며, 부인은 숙인(淑人) 서흥김씨(瑞興金氏)이다. 고려 공민왕 23년인 1374년에 태어나 조선 건국 후 사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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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녕최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사설서(司設署) 영(令)을 지낸 최수명(崔守明)이고, 어머니는 숙인(淑人) 진강정씨(晉康鄭氏)이며, 부인은 숙인(淑人) 서흥김씨(瑞興金氏)이다. 1349년(고려 충정왕 1)에 태어나 13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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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화순. 자는 적원(積元). 아버지는 병조좌랑을 지낸 최세준(崔世俊)이고, 어머니는 평해손씨(平海孫氏)로 현감을 지낸 손준(孫濬)의 딸이다.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의 아우이다. 부인은 정몽상(鄭夢祥)의 딸이다. 1575년(선조 8) 한양에서 형 수우당 최영경과 함께 선대의 토지가 있는 진주로 와서 도동에서 한집에 같이 살면서 섬기기를 부모같이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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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학자. 본관은 진주. 자는 우석(禹碩). 호는 사헌(思軒). 아버지는 하한조(河漢祖)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박기찬(朴基欑)의 딸이다. 1825년(순조 25) 진주에서 출생하여 이우빈(李佑斌+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53년(철종 4) 무과에 급제한 후 부사과, 훈련원첨정 등을 지내고 1862년 거제도호부사로 나갔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는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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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하승해(河承海)이며 어머니는 보성선씨 전객령(典客令) 선진기(宣眞起)의 딸이다. 조선 초에 병마도절제사를 지낸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이 형이다. 진주 주위 고을 수령을 지내며 형 하경복을 대신하여 모친 봉양에 정성을 다하여 효행의 명성이 높았다. 당시 하경복은 나라의 북경 수비를 맡아 15년간이나 국방과 영토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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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에 출생하여 조선 건국 후인 1402년(태종 2) 무과에 급제한 후 상호군을 지냈다. 1410년에는 무과중시에 다시 급제하여 첨지총제로서 함경도 경원과 경성의 군사 요새지를 수비했으며, 세종 때에도 경기도 및 경상도의 병마절제사를 지냈다. 1433년(세종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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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994년(성종 13)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고, 1009년(목종 12) 중랑장(中郞將)이 되었다. 목종이 병들어 자리에 눕자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方), 중랑장 탁사정(卓思政) 등과 함께 목종이 거처하는 궁궐 주변을 지켰으며, 얼마 후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郞中)이 되었다. 1010년(현종 1) 동서계(東西界)에 있을 때 임의로 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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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몽징(夢徵), 호는 불우당(不憂堂)이다. 기개와 도량이 크고 두드려졌으며 말달리기와 활쏘기에 능했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이 일어났을 때 선전관으로 있으면서 난의 진압에 큰 공을 세웠다. 무신란 때 세운 공으로 벼슬이 부호군(副護軍)에 오르고 2등 공신에 올랐다. 은궁(銀弓)과 옥시(玉矢)를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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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도원(道源), 호는 환성재(喚醒齋). 아버지는 생원 하인서(河麟瑞)이며 어머니는 풍양조씨 조협(趙協)의 딸이다. 부인은 동래정씨로 이조판서를 지낸 정광세(鄭光世)의 손녀이며 생원 정충집(鄭忠輯)의 딸이다. 1530년(중종 25)에 태어나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고 남명(南溟) 조식(曺植)을 사사하였다. 1568년(선조 1) 진사시에 장원하여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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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순흥부사를 지낸 하윤린(河允潾)이다. 1347년(충목왕 3)에 태어나 1365년(공민왕 14) 문과에 급제한 후 1367년 감찰규정이 되어 신돈(辛旽) 문객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좌천되었고, 1388년(우왕 14)에는 최영(崔瑩)의 요동정벌을 반대하여 양주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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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호여(浩汝)이다. 1837년(헌종 3)에 문과 병과에 올랐다. 이후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종부시 주부(宗簿寺主簿)를 역임하였고, 1849년에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냈다. 가훈을 잘 이어받아 부귀영화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4「문과조(文科條)」와 『증보 진양속지(晋陽續誌)』에 관련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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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사윤(士潤), 호는 송대(松臺). 환성재(喚醒齋) 하락(河洛)의 손자로, 아버지는 매헌(梅軒) 하경휘(河鏡輝)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이다. 1583년(선조 16) 진주 수곡면 효자리 효동에서 출생하여 어릴 때부터 총명함이 뛰어나고 재주와 기개가 월등했다. 임진왜란을 맞아 조부와 부친이 상주성에서 순국하자 어린 나이로 왜적의 눈을 피해 시신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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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자경(子敬),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하위보(河魏寶)이며, 어머니는 참의를 지낸 이륜(李倫)의 딸이다. 뒤에 영모정(永慕亭) 하진보(河晋寶)에게 입양되었다. 1571년(선조 4) 태어나 최영경(崔永慶)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남도 창녕 화왕산성(火旺山城)으로 곽재우(郭再祐)를 찾아가 군무를 도와 공을 세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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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태이(太易), 호는 송정(松亭). 고려 명신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면(河沔)이며 어머니는 함안조씨 조정견(趙庭堅)의 딸이다. 부인은 파평윤씨 윤언례(尹彦禮)의 딸과 밀성손씨 손천뢰(孫天賚)의 딸이다. 1553년(명종 8)에 출생하여 어릴 때부터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히 전수받은 종숙 각재(覺齋) 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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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하경복(河敬復)의 손자. 성종 때 사람으로 세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병조참판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성품이 청간(淸簡)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시호는 경절(敬節)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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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新稀). 부윤을 지낸 하자종(河自宗)의 아들이다. 1376년(고려 우왕 2)에 태어나 일찍이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1396년(조선 태조 5) 문과에 급제한 후 예문춘추관 수찬관이 되었다. 이어 집의, 동부대언, 예조판서를 지냈다. 1423년(세종 5) 대사헌으로 있을 때에는 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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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 자는 평지(平之)이다. 진주 사죽에 살았다. 1514년(중종 9) 무과에 급제한 후 통훈대부와 사천현감, 여산군수, 안주목사를 지냈다.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았으며, 나라의 재목으로서 장차 크게 쓰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안주에 있을 때 병을 얻어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20년 동안 휴양하다가 별세하였다. 어관포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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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미재(美哉). 안주목사를 지낸 하우치(河禹治)의 손자이다. 진주 단지동에 살았다.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합격한 후 순충보조공신 자헌대부를 역임했고 이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진평군에 책봉됐다. 천성이 자상하고 형제간에 화목하였다. 장례와 제례는 한결같이 가례를 따랐으며, 몸가짐에 한 점 흐트러짐 없고 고을에서 처신함에 성신을 다하니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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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수부(晬夫), 호는 운수당(雲水堂). 거제 현령 하계지(河繼支)의 아들이다. 운수당 하윤은 1477년(성종 1)에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483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 겸 호당(湖當)에 있다가 육서(六署)를 거쳐 홍문관 교리를 지냈다. 1487년에 예조좌랑과 호조좌랑을 지내고, 형조 좌랑 직에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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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고려 말 공민왕 때 평안도 숙천군 수령으로 있으면서 원나라 군관이 들어와 번잡하게 굴었으나 접대에 소홀함이 없었고, 정사를 함에 인의로써 근본을 삼아 형벌을 가볍게 하니 주민들의 칭송이 높았다. 후에 벼슬이 순흥부사에 이르렀다. 『진양지(晋陽誌)』권3「임관조(任官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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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찬성사로 치사(致仕)하고 진주군(晋州君)에 봉해진 하즙(河楫)의 아들이다. 벼슬에 나가 여러 지방에서 백성들을 돌보았으며, ‘잘못된 것을 알고서 그릇 판단한다면 하늘이 벌을 내릴 것이다.’라는 글을 써서 걸어놓고 일을 보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별세로 3년 동안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있었을 때 우왕이 ‘효를 옮겨 충으로서 삼고 그 애통함을 억제하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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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1344년(충혜왕 복위 5) 과거에 급제한 후 1363년(공민왕 12) 전공정랑(典工正郞)으로 있으면서 홍건적의 침입을 막아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1등공신에 올랐다. 1375년(우왕 1) 전라도원수 겸 도안무사에 있으면서 임의로 정원 외의 연호군(煙戶軍)과 별민군(別民軍)을 두었다하여 파면 당하였다. 이때 후임으로 온 원수 유영(柳瑩)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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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원룡(元龍). 호는 영무성재(寧無成齋). 1540년(중종 35)에 태어나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효심이 깊고 우애가 남달리 뛰어나 3형제가 한 집안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항상 웃으며 사람들을 대했다고 한다. 명종 때 진사시에 합격한 후 소촌도찰방(召村道察訪)이 되었고, 임진왜란 후에는 이원익(李元翼)의 천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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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여칙(汝則), 호는 자송당(自訟堂). 송파(松波) 하원(河沅)의 손자이다. 세 번이나 향시(鄕試)에 합격하고 문과시험에 응했지만, 서리가 좋은 물건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는 과거를 포기하고 성리학 공부에 매진했다.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과 내수(耐叟) 허추(許錘)와 더불어 도의의 교분을 가졌는데, 진주목사 윤노동(尹魯東) 영(營)에 보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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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백규(伯逵)이다. 선조 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관직이 정3품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이 되어 모든 일을 사리에 밝고 엄하게 다스렸으므로 아랫사람들과 백성들이 두려워하며 복종하였다. 때마침 광해군이 모후인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는 사건이 일어나자 눈물을 흘려 탄식하면서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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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득제(得濟). 호는 송헌(松軒), 시호는 원정(元正).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좌리공신(佐理功臣)에 녹훈되었으며, 진천부원군(晉川府院君)에 봉해졌다. 관직은 찬성(贊成)까지 올랐다. 일찍이 정치도감(整治都監)의 관원으로 있을 때 황후의 동생인 기삼만(奇三萬)을 장살하였다. 후에 강회백(姜淮伯)이 그의 초상화에 대하여 평하기를 “도량이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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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할아버지는 생원 하위보(河魏寶)이고, 아버지는 참봉 하경(河憬)이며, 어머니는 함안이씨로 대사헌을 지낸 이인형(李人亨)의 증손녀이다. 부인은 창녕조씨(昌寧曺氏)로 동곡 조경윤(曺慶潤)의 딸이다. 1586년(선조 19)에 출생하여 임진왜란 때 왜군에 억류되어 고초를 겼었다.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과 함께 광해군을 왕위에 옹립한 공으로 정운원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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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 자는 진백(晉伯), 호는 태계(台溪). 대사간 하결(河潔)의 후손이다. 1624년(인조 2) 진사에 급제하였고, 163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으나 부모봉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았다. 1636년 병자호란이 터지자 의병장에 추대되어 상주지방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성태동의 집으로 되돌아왔다. 효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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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계도(啓圖), 호는 쌍부헌(雙負軒)이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잠시도 어버이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 재능과 도량이 넓고 깊으며,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사람들이 그를 참봉으로 특별히 천거하여 무과에 올라 선전관(宣傳官)으로 제수되어 명망(名望)을 얻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따라 북벌계획을 밀의하고 재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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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덕재(德哉), 호는 영모정(永慕亭). 하숙(河淑)의 아들이다. 진주 단지동에 살았다. 1555년(명종 10)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를 거쳐 1599년 주서가 되었다. 이듬해 세자시강원 사서가 되고 정언, 병조정랑, 지평, 예조정랑, 헌납 등을 역임했다. 1567년 선산부사가 되었고, 1573년(선조 6) 장령이 되었다. 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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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천기(千期), 호는 태와(台窩). 진사 지명당(知命堂) 하세응(河世應)의 아들이다. 1738년(영조 14)에 38세로 문과에 급제해 성균관 전적, 주부, 직장 등의 벼슬을 지내고 승문원정자 벼슬로 승진을 했으며, 외직으로는 찰방 등의 벼슬을 지냈다. 당시 조정은 당쟁으로 시끄러웠다. 일찍이 부친인 지명당 하세응은 장희빈의 신원을 청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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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 자는 여해(汝海), 시호는 강장(剛莊). 할아버지는 증 병조판서 하승해(河承海)이고, 아버지는 좌찬성을 지낸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이며,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정씨(鄭氏)이다. 부인은 순흥안씨 순흥군의 딸과 함양박씨 박한의 딸이다. 1434년 회령진(會寧鎭) 절제사에 제수되었고, 동년 12월 영북진(寧北鎭) 절제사로 전임되었다.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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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 자는 호원(浩源), 호는 각재(覺齋).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한 후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평소 효심이 지극하여 매일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깨끗이 빗질한 후 어머니 침실로 찾아들어 문안을 드리니, 여러 문인들이 말하기를, 『소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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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여해(汝海). 진사 하협(河悏)의 손자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깨우쳤고, 성품과 행실이 효성스러웠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섬김에 있어서 몸을 다하여 공경하였고,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서는 3년의 시묘를 정성을 다하여 예로써 마쳤다. 후일 마을 사람들이 그 산소가 있는 골짜기를 ‘하효자 시묘골’이라고 이름 붙여 그의 효행을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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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성종 때의 문신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공조참의를 지낸 하경호(河慶灝)이며, 어머니는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다. 진주 운문에 살았다. 효종 때 훈련원주부를 지냈고 현량과(賢良科)를 통해 특별히 선전관이 되어 왕의 북벌 논의에 참여하였다. 효종이 승하하자 피를 토하며 곡을 하였다. 이후 나라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두문불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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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할아버지는 성균관 진사 단지(丹池) 하협(河悏)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용강(龍岡) 하달한(河達漢)이다. 부인은 청주한씨(淸州韓氏) 조은(釣隱) 한몽삼(韓夢參)의 손녀(孫女)이며, 후처는 남평문씨(南平文氏) 문성흠(文聖欽)의 딸이다. 단목(丹牧) 흥용(興龍)에서 출생하였다. 오곡관재(梧谷官齋)에서 수학(修學)하였으며 황산 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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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의병.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변(子變), 호는 조은(釣隱). 헌납(献納) 한여철(韓汝哲)의 손자로, 아버지는 참봉 한계(韓誡)이며, 어머니는 허주(許鑄)의 딸 양천허씨(陽川許氏)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 한몽룡(韓夢龍) 밑에서 학업에 정진하였으며 박제인(朴齊仁)·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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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성뢰(聖賚). 1695년(숙종 21) 무과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에 보직되었다가 여러 벼슬을 거쳐 제주목사(濟州牧使)로 부임, 기민(饑民)을 진휼하고 서울에서 약을 구해다 악역(惡疫)을 퇴치하는 등의 공을 세워 송덕비(頌德碑)가 세워졌다. 그 후 통어사(統禦使)·부총관(副摠管)을 지내고,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 때 안성(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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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 자는 중명(仲明). 사직 한승리(韓承利)의 아들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품행이 매우 방정하고 효도가 극진하여 이름을 날렸다. 1543년(중종 38)에 생원이 되었고, 1548년(명종 3)에는 부묘별시문과(祔廟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그 후 예문관 검열을 지냈다. 1553년 무렵에 공조좌랑을 지낸 바 있으며, 이어 헌납 등을 거쳐 성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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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우경(佑卿)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주부에 이르렀다. 1728년(영조 4) 정희량이 무신란을 일으키자 난을 진압하고 위세를 떨쳤다. 뒤에 양무공신에 오르고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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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의 관리. 진주도독으로 있던 822년(헌덕왕 14) 3월 웅천주(熊川州)[지금의 공주] 도독으로 있던 김헌창(金憲昌)이 반란을 일으켜 세력을 떨치면서 여러 군·현의 수령들을 협박하여 복속시켰다. 이때 향영(向榮)은 끝까지 복속하지 않고 저항하다 지금의 밀양으로 후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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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김해. 호는 관란(觀瀾).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우후(虞侯)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700명을 모집하여 왜적을 대파하는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염창강 언덕에 관란정(觀瀾亭)을 짓고 술로써 여생을 보냈다. 1812년(순조 12) 고장의 선비들이 조정에 임진왜란 때 허국주의 공을 알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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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자는 대응(大應). 진주 승산에 살았다. 천성이 충의롭고 지략이 있어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다. 조성재의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여 정희량과 동서지간이 되었다. 그러나 처남인 조성재와 동서인 정희량의 뜻하는 바가 사리에 어긋나고 있음을 알고 일체의 왕래를 끊어버렸다. 그러던 중 1728년(영조 4) 두 사람이 두목이 되어 반란을 일으켰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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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윤경(潤慶). 호는 송암(松菴). 장무공(莊武公) 황윤(黃潤)의 8대손이다.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 때 의병장이 되어 적을 거창의 소사평(素沙坪)에서 크게 무찔러 공을 세웠다. 무신란은 청주 출신의 이인좌(李麟佐)가 주동이 되어 일으켰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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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명보(明甫). 영의정을 지낸 황희(黃喜)의 5대손이며, 좌의정에 추증된 황윤공(黃允恭)의 아들이다. 1550년(명종 5) 출생하여 1593년(선조 26)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할 때까지 일생을 무장으로서 활약하였다. 평소 인품이 중후하고 절개가 남달리 굳었으며, 힘세고 날쌨다.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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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충신은 전통시대의 사상을 포괄하여 내려오는 용어이지만, 나라에 충성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할 수 없는 기본적 덕목이다. 이러한 충성심을 발휘하여 오늘날까지 후세의 칭송을 받고 있는 충신들은 그 마음이 항상 나라와 임금, 그리고 겨레를 위하는 일념에 차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개인의 영달이나 어느 한 집단의 권력 쟁취를 위하여 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