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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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양씨(南原梁氏) : 효열부(孝烈婦). 승의랑(承義郞) 진양(晉陽) 강수제(姜壽齊)의 아내요, 찰방(察訪) 양장(梁樟)의 딸이다. 집에 있을 때는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나이 15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입에 넣어서 소생할 수 있었다. 시집을 가서는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과 공경을 다했다. 지아비가 죽자 양씨가 이르기를 “내가 지하로 따르고자 하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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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최씨(全州崔氏) : 열부(烈婦). 최운개(崔云凱)의 딸이요, 승사랑(承仕郞) 진양(晉陽) 정승업(鄭承業)의 아내다. 임진년에 난리가 났다는 말을 듣고 항상 칼을 차고 스스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만일 불행한 일을 만나게 되면 나는 반드시 이것으로써 죽음을 결단할 것”이라고 했다. 해를 넘겨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과연 왜적이 이웃 마을을 핍박하여 거의 모두 죽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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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전해오는 진양정씨 가문의 충신에 관한 설화. 1980년 8월 7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일반성면 창촌리 신촌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손영권(남, 56세)이다. 사봉면(寺奉面)에 진양정씨(晋陽鄭氏) 가문의 사당이 있는데, 사당 주인공 정씨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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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대함(大函).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조선시대 종6품의 품계] 강오수(姜鰲壽)이고, 어머니는 진양정씨(晋陽鄭氏)로 생원(生員) 정이량(鄭以良)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했으며 자라서는 기량이 뛰어났으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마을 사람들이 애석하게 생각했다. 1522년[중종 17]에 어풍정에서 태어나 만년에 설매마을로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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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어귀에 검바위 또는 검암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본래 진주군 송곡면과 금동어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송곡동(松谷洞), 홍정동(鴻亭洞), 검암동(儉岩洞), 가토동(佳吐洞)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검암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엄정(嚴亭), 운문(雲門), 차현(車峴), 신담(新潭)의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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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총칭하는 말. 고개에는 전설과 그 지역의 지명과 관련된 명칭이 붙어 있다. 고개와 관련된 지명은 ‘고개’, ‘재’, ‘티’, ‘치’, ‘개’ 등이 있다. 『진주시사』와 『진양군사』를 중심으로 진주시의 고개를 살펴보면 대략 42곳으로 파악된다. 이들 고개를 위치와 명칭 유래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막고개는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대평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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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 이래로 이천(耳川)[귀내]이라 하다가 1995년에 구천(龜川)이라 개칭하였다. 현지 주민들은 지금도 귀내 또는 구내라 한다. 진주목 시대에는 내진성면(內晋城面)에 속했으나, 1914년에 진성면으로 편입되었다. 도동(道洞), 구천(龜川) 2개 마을이 형성된 후 삭녕최씨(朔寧崔氏)가 입향하고, 다음 진양정씨가 입촌하였다. 문산읍과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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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 위쪽에 있는 마을 이름. 진주 지역에서는 귀퉁이를 ‘귀티이’라고 한다. 구태마을은 대천리 위쪽 귀퉁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귀티이’라고 하다가 한자어로 변하여 ‘구태’가 되었다고 한다. 대천리 위쪽, 금동마을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2006년 현재 인구는 72명이고 가구 수는 29호이며, 성씨로는 진양하씨와 진양정씨가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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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진성면(內晋城面) 대사동(大寺洞), 두수동(杜水洞), 백암동(白岩洞) 각 일부를 합쳐 대사리(大寺里)로 명명하였다. 1914년 이전에는 내진성면 대사동(大寺洞), 두수동(杜水洞), 백암동(白岩洞)이었고, 지금은 행정단위로 대사(大寺), 두소(杜蘇)의 두 마을로 되어 있다. 대사리 북쪽에서부터 하천이 흘러와 백암저수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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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 고분군의 분묘 옆에 세워져 있는 재실. 영모재는 단종 때 우의정을 지낸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1454]을 기리고 있다. 정분은 본관이 진주(晋州)로 자는 자외(子畏), 호는 애일당(愛日堂)이며,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1856년 가을에 진양정씨 종중의 논의를 거쳐 재실을 짓기로 합의하여 정분의 묘소 동편 옆에 중건하였다. 재실을 짓게 된 간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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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남편은 성사회(成師悔)이고, 아버지는 정사갑(鄭師甲)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진양정씨는 남편 성사회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혈서를 써서 세 번이나 영정 앞에 두고 갓 끈으로 스스로 목을 매에 죽었다. 암행어사에 의해 이 일이 나라에 보고되어 1816년(순조 16)에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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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효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진양정씨는 시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독한 지경에 처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먹게 하여 회생시켰으나 아직 위독한 상황이었다. 이 때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집 뒤의 바위틈에 산삼이 있을 것이라는 계시를 하여 실제로 캐어보니 산삼이 나왔다. 캔 산삼을 시탕하여 올렸더니 시아버지가 쾌차하였다. 한편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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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동산리에 있는 바위. 인근 마을에 사는 성씨들의 족보를 보관하는 바위이다. 이 바위 속에는 창녕성씨(昌寧成氏), 재령이씨(載寧李氏), 함양박씨(咸陽朴氏), 진양강씨(晋陽姜氏), 곡부공씨(曲阜孔氏), 전주전씨(全州全氏), 금산김씨(錦山金氏), 진양정씨(晋陽鄭氏), 함안이씨(咸安李氏)의 족보가 보관되어 전해지고 있다. 동산리 분매골 앞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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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진양정씨는 15세의 나이에 남편 이인호가 요절하자, 오히려 시부모를 위로하고 조금도 비통해하는 빛이 없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남편의 뒤를 따라 자진하려 했다. 진양정씨의 부모가 그 정성을 갸륵하게 여겨 개가를 시키려 하자 가만히 방으로 들어가 자결하였다. 이에 향인들이 진양정씨의 열행을 가상히 여겨 비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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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대여촌면 가방동(加芳洞)과 사동(沙洞), 금산면 중촌동(中村洞)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사동의 이름을 따서 장사리라 하였다. 사동은 무제봉 통사바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형국이 흡사 가래삽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삽골’ 또는 ‘삿골’로 불리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전하여 오는 이야기로는 이 곳 상의마을에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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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월아리에 있는 진양정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진양정씨의 5세손 장춘원(張春源)과 6세손 장진의(張振義)가 중심이 되어 1942년에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월아리 마을회관 옆에 남향으로 있다. 거북받침돌에 높이 141㎝, 폭 53㎝, 두께 23㎝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머릿돌 중앙에는 태극문양 조각이 있다. 비의 제목은 ‘유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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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댐과 남강댐에 의해 생긴 인공호수. 진주를 흐르는 남강의 근원은 둘이다. 하나는 지리산 북쪽에서 나오는데 경호강이라 부르며, 다른 하나는 지리산 남쪽에서 나오는데 덕천강으로 부른다. 이 두 강이 진주 시내 서쪽 광탄(光灘)[너우니]에서 합류하여 동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 제방을 쌓고 사천만으로 방수로를 뚫어 남강 하류의 홍수를 방지하자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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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철종 13년(1862) 2월 14일 경상도 진주지역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봉건 농민항쟁. 진주의 농민항쟁은 그동안 누적된 삼정문란과 경상도우병사 백낙신(白樂莘)의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여 유계춘(柳繼春) 등이 농민들을 이끌고 일으킨 대규모 농민운동이었다. 엄격한 신분제와 자급자족적 경제체제에 바탕을 둔 지주(地主)·전호제(佃戶制)가 근간을 이루고 있던 조선왕조의 봉건적 사회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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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씨와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어 모여 사는 마을. 진주는 신라시대 구주의 하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항상 영남의 계수관으로 그 위치를 지켜왔으며 토성세력도 강성하였다. 진주의 성씨는 정(鄭), 하(河), 강(姜), 류(柳), 소(蘇), 임(任), 강(康), 김(金), 박(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목(晉州牧) 조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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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진양정씨는 남편 최태재가 세상을 떠나자 집안 식구에게 말하기를 “여자가 순종해야 할 세 가지 길이 있는데, 나는 자식이 없으니 남편을 따라서 죽는 것이 옳다. 내가 죽거든 남편과 같이 장사지내 달라.” 하고 목을 매어 죽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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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군학(君學).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윤청(河胤淸)이며, 어머니는 의령남씨 남천해(南天海)의 딸이다. 부인은 파평윤씨 윤성(尹惺)의 딸, 연안이씨 이우하(李遇夏)의 딸, 진양정씨 정헌주(鄭憲周)의 딸이다. 1723년(경종 3)에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 스스로 학문을 익혀 경전을 귀히 여겼다. 평생 언행에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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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용강(龍岡).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성균진사(成均進士) 단지(丹池) 하협(河悏)이며, 어머니는 진양정씨 정승훈(鄭承勳)의 딸이다. 부인은 은진송씨(恩津宋氏) 참봉 송흠원(宋欽遠)의 딸과 현풍곽씨(玄風郭氏) 통덕랑(通德郞) 곽창후(郭昌後)의 딸이다. 용강(龍岡)이라는 호를 사용한 것은, 남양 땅 와룡강(臥龍岡) 아래에 은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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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의윤(義允), 호는 동료(東寮).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경운(河慶運)이며 어머니는 은진임씨(恩津林氏)로 임찬원(林纘源)의 딸이다. 부인은 진양정씨로 정주빈(鄭周贇)의 딸이다. 1830년(순조 30)에 출생하여 8세에 친상을 당하고 15세 때는 조부인 부용담(芙蓉潭) 하필룡(河弼龍)의 상을 당하면서도 법도에 한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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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행해진 혼인하기 전의 처녀와 총각이 선을 보는 일에서부터, 혼인하여 첫날밤을 치를 때까지의 관련 의례. 혼례는 예나 지금이나 남녀가 부부가 되는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 의례이다. 전통적인 예법에 따르면, 친척이나 이웃을 통해서 중매가 이루어지고, 신랑집에서 신랑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이 적힌 사주단자(四柱單子)를 신부집에 보내며, 이를 받은 신부집에서 혼인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