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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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여신(成汝信) : 자는 공실(公實)이요, 호는 부사(浮査)며, 우윤(右尹) 성두년(成斗年)의 아들이니 가정(嘉靖) 병오년(명종 1년, 1546)에 나서 만력(萬曆) 기유년(광해군 1년, 1609)에 생원과 진사의 두 시험에 합격했다. 일찍이 남명(南冥)과 구암(龜巖)의 두 문하에서 유학하여 경의(敬義)의 지결(旨訣)을 얻어듣고 종신토록 마음에 깊이 새겼다. 서책은 읽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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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특(姜智特) : 참의(參議) 강우(姜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품이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고 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절행으로 고을에 울렸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영매하여 굳세고 뛰어난 것이 사람들의 경탄할 바”라고 했다. ○ 하경소(河鏡昭) : 자는 공극(公極)이요, 호는 동야(東野)니 각재(覺齋) 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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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양씨(南原梁氏) : 효열부(孝烈婦). 승의랑(承義郞) 진양(晉陽) 강수제(姜壽齊)의 아내요, 찰방(察訪) 양장(梁樟)의 딸이다. 집에 있을 때는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나이 15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입에 넣어서 소생할 수 있었다. 시집을 가서는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과 공경을 다했다. 지아비가 죽자 양씨가 이르기를 “내가 지하로 따르고자 하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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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중(汝中), 호는 매촌(梅村). 호조참의에 추증된 임계(臨溪) 강심(姜深)의 아들이다. 1560년(명종 27)에 출생하여 1627년(인조 5)에 별세한 무인으로, 일찍이 무예를 익혀 같은 시대에 무인으로 활약한 정기룡(鄭起龍)·주몽룡(朱夢龍)과 함께 ‘3룡(三龍)’으로 불렸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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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다양한 생활을 수용하기 위한 구축물의 총칭. 건축의 범위와 종류는 매우 광범위하다. 역사적인 건축물에 속하는 궁궐건축이나 관아, 서원건축, 각종 정자 구조물을 비롯하여, 불교에 관련된 사찰이나 탑, 부도, 그리고 현대적인 건축물인 고층 구조물이나, 도로 및 교량까지도 포함된다. 또한 재료에 따라서도 나무나, 돌, 흙, 벽돌, 콘크리트 등을 이용한 구조물 등이 있다. 진주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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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있는 서원. 경상도 지역에 건립된 193개의 서원 중 경상남도 지역은 19개 군에 44개 서원이 건립되었는데, 그 가운데 진주지역에 해당되는 서원은 7개로 경상남도에서 가장 많다. 재실의 수에 있어서도 진주지역에 약 500여개가 분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현재도 문중에 따라 새로 건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원은 선현을 모시는‘사(祠)’와 제자를 교육하는‘재(齋)’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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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추백(秋佰), 호는 노주(蘆洲). 아버지는 김단(金鍴)이며, 후에 김곤(金錕)에게 입양되었다. 1660년(현종 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장령, 헌납, 문학, 보덕을 차례로 역임하였고, 1694년 사간으로 있을 때 서인인 한중혁(韓重爀) 등이 폐비 민씨의 복위를 도모하자 이들을 탄핵하였다. 후에 숙종이 민씨의 폐위를 후회하게 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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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字)는 중준(仲遵), 호는 이계(伊溪). 아버지는 신촌(新村) 남해준(南海準)[1598~1667]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 권지(權誌)의 딸이다. 처는 아주신씨(鵝州申氏)로 신지의(申之義)의 딸이다. 효종과 숙종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다. 1620년(광해군 12)에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동 월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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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성 동쪽지역으로, 옛 행정구역 또는 행정지명 중 하나. 조선 전기에는 자연촌락의 성장과 중앙집권화의 진행에 의해 중앙권력이 군현의 하부단위인 촌락에까지 개입하게 되면서 면리제라는 촌락운영체계가 형성되었다. 경국대전에 5호(戶)를 묶어 1통(統)으로, 5통을 묶어 1리(里)로 한다고 규정하고, 몇 개의 리를 묶어 면(面)으로 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읍치를 중심으로 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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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목 진주성의 북쪽지역으로 옛 행정구역 또는 행정지명 중 하나. 조선 전기에는 자연촌락의 성장과 중앙집권화의 진행에 의해 중앙권력이 군현의 하부단위인 촌락에까지 개입하게 되면서 면리제라는 촌락운영체계가 형성되었다. 경국대전에 5호(戶)를 묶어 1통(統)으로, 5통을 묶어 1리(里)로 한다고 규정하고, 몇 개의 리를 묶어 면(面)으로 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읍치를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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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가 불상을 모셔놓고 불법을 수행하고 설하는 장소. 사찰은 순수 우리말로 ‘절’이라고 한다. 절은 불상과 당탑을 모시고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불도를 수행하고 교법을 가르쳐 펴는 기능을 가진 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절은 고구려의 불교 도입 이듬해인 373년(소수림왕 3), 평양에 세워진 이불란사(伊弗蘭寺)와 성문사(省門寺)이다. 신라의 경우에는 아도가 선산지방에서 최초의 포교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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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의 행정구역 중 하나. 조선시대 진주성 서쪽지역으로, 현재 평거동, 대평면, 수곡면 지역과 하동군 화개면, 악양면, 적량면, 옥종면, 청암면, 횡천면 일부와 사천시 축동면, 산청군 시천면, 삼장면, 단성면 일부 지역에 해당된다. 고려 태조 23년(940) 3월에 강주(康州)를 진주(晋州)로 개칭하면서 처음으로 지금의 진주라는 지명이 등장하게 된다. 이후 성종 2년(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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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대축리에 있는 서씨의 입향조(入鄕祖)인 서이언의 묘. 서이언(徐而彦)[1702~?]은 조선 숙종~영조 연간에 걸쳐 살았던 인물로, 비문에 의하면 숙종 28년 임오년에 태어난 기록은 있으나 몰년 기록은 없다. 수직(壽職)으로 정헌대부(正憲大夫)의 품계를 받은 달성서씨의 입향조이다. 묘소는 진주시 정촌면 대축리 향교부락에 있는 서씨 문중 재실인 숭모재(崇慕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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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의 법정리 본래 사죽면(沙竹面) 지역으로 큰 못이 있어 신당(新塘)이라 하였다. 1914년 진주군 사죽면 신당동 일부와 죽산동을 합쳐 신당리라 하고 집현면에 편입시켰다. 진주시 초전동과 인접하여 있으며, 동쪽으로 남강을 접하고 있다. 33번 국도가 지나간다. 2002년 6월 30일 현재 148세대 454명이다. 벼농사 이외에도 수박, 고추 배추 등 시설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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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장흥리에 있는 비각. 조선 1718년(숙종 44) 9월 12일 숙종이 지족당(知足堂) 조지서(趙之瑞)[1454~1504]의 위패를 모신 신당서원을 사액하고 예조좌랑 이안국(李安國)으로 하여금 제를 고하는 사제문비를 세우고 이를 보호할 비각을 세웠다. 조지서는 1474년(성종 5) 과거에 합격한 후 사가 독서하였으며, 연산군 때 창원부사(昌原府使)로 내려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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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를 개조(開祖)로 하는 전통시대의 대표적인 사상. 유교의 교리는 곧 인의(仁義)와 도(道)와 수기(修己), 치인(治人)에 귀결된다.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의 오경(五經)과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사서(四書)는 유교의 중요한 경전이다. 공자 이후 유교가 천하에 행하여져 여러 학파와 함께 일어났으나 증자(曾子), 자사(子思)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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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효자 이경훈(李敬訓)의 아내이다. 진주 대여촌에 살았다. 임진왜란 때 남편과 함께 산골 깊이 피난하다 산골을 마구 뒤지던 왜적에게 붙들리게 되었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무참히 살해되고 자색이 아름다운 부인은 그들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데 달탄(達灘)에 이르렀을 때 왜적의 눈을 피해 강물에 몸을 날려 절개를 지키고 죽었다. 숙종 때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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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의금부도사인 이번(李蕃)의 아내이다. 진주 운곡리에 살았다. 임진왜란 때 왜적과 맞부딪혀 싸우다 죽음으로써 그 고귀한 절개를 지켰다. 숙종 때 이르러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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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부. 본관은 재령. 이중광(李重光)의 딸이며, 한시회(韓時晦)의 부인이다. 시부모를 섬기는데 지극한 효성으로 하였다. 시부모가 돌아가자 친정으로 와서 부모를 섬김에 또 효성을 다하였다. 나이 70이 되었어도 의복과 음식을 친히 마련하였으며 부모가 돌아가자 3년상을 치렀다. 숙종 대에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복호(復戶)를 주고 숙부인(淑夫人)을 증여하였다. 『진양속지(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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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안동권씨는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잡혀가는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호랑이를 향해 크게 소리치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로 대항하는 등 기지를 발휘하여 시아버지를 구했다. 이 일이 숙종조에 알려져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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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井村面)에 전해오는 한 무식꾼의 입사담(入仕譚). 류종목, 빈재황이 정촌면 화개리 모심부락에서 조사·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강선호[남, 당시 66세]이다. 한 가난한 부부가 원님의 부임 행차를 보고 부러워했다. 남편은 ‘인생만사 복불복(福不福)’으로 여겼다.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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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함안조씨는 홀로된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남편에게는 매우 공경히 대하였다. 남편 정상천(鄭相天)이 죽음에 직면하자, 손수 송별사를 시어머니와 본가에 써서 두고 얼마 후 조용히 남편 뒤를 따라 세상을 하직하였다. 숙종 때에 이 일이 알려져 정려되었고, 정언(正言) 이약렬(李若烈)이 정려문을 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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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字)는 경보(敬甫), 호는 명암(明菴)·대명처사(大明處士).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의하면, 태어나면서부터 남다른 재주가 있고 젊어서부터 독서하기를 좋아하였으며 지조가 맑고 고상하였다. 일찍이 과거에는 뜻을 버리고 아름다운 산수를 사랑하여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녔다. 두류산의 무이곡(武夷谷)에 들어가서 와룡암(臥龍菴)을 세우고 제갈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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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 호는 봉강(鳳岡).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의 손자다. 어릴 때부터 글을 지으니 할아버지 정문부가 매우 기특히 여기고 사랑하였다. 행실에 있어서 효제(孝悌)로써 근본을 삼고 학문을 함에 형제가 함께 살면서 밤낮으로 강론하고 연마하니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와 여러 학자들이 모두 추앙하였다. 숙종 때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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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함안. 자는 준여(竣汝). 생육신의 한 사람인 정절공(貞節公)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5세손이다.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한 후 금군위(禁軍衛)와 고성 참군(參軍)을 거쳐 방위장(防衛將)이 되었다. 방위장(防衛將)으로 있을 때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터지자 죽음으로써 보국하기를 맹세하였고 정유재란 때에는 진주 반성(班城)에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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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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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絶對)의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여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한계를 갖는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에서 기인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고 믿는 절대자에게 의탁하여 현세에서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추구하고, 사후세계에서는 구원을 희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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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장흥리 소재의 사제문이 새겨 있는 비석. 사제문(賜祭文)이란 임금이 죽은 신하에게 제사를 지내주며 함께 내린 글을 말한다. 진주 장흥리 숙종사제문비는 1718년(숙종 44) 숙종이 지족당 조지서를 배향한 신당서원에 예조좌랑 이안국을 보내 치제하게 한 사제문을 새긴 비석이다. 진주에서 합천으로 가는 길에 집현면 장흥리를 지나는 도로에서 약 30미터 떨어져 있는 보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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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서 전승되는 창열사(彰烈寺) 중수와 관련한 설화. 창열사 중수 전설은 특정 지역을 한계로 하는 지역적 전설이며, 역사적 사실로부터 성립하고 성장한 역사적 전설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귀신은 민간에 전승되는 설화에서 뿐만 아니라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다루어진 소재였다. 귀신담은 민담에서는 신이담(神異談)의 일종으로 널리 전승되는 소재이다. 사실 이러한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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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응서(應瑞), 호는 지명당(知命堂).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현손이며, 하무(河楙)의 아들이다. 1661년(현종 2) 진주 수곡면 사곡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재주가 뛰어나고 견문이 넓어 문장을 만드는 데 있어서 모두 경전의 뜻을 전하였다. 당시의 학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와 눌암(訥菴) 이광정(李光庭)과 더불어 학문과 도의를 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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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이태(而泰).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 하륜(河崙)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형조참의를 지낸 하득형(河得亨)이며 어머니는 단양장씨(丹陽張씨)로 장식(張植)의 딸이다.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 신기한(申起漢)의 딸이다. 1695년(숙종 21)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학문을 열심히 연마하였다. 숙종 대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할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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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안에 있는 사찰. 고려 말 처음 건립될 당시의 이름은 내성사(內城寺)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숙종이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호국사(護國寺)라는 이름을 내렸다. 고려 말기에 왜구(倭寇)의 빈번한 침입을 막기 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 승병(僧兵)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다. 진주성 내 서장대와 창렬사 사이의 골짜기에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