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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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趙琦) : 을축년(인조 3년, 1625)에 와서 정묘년(인조 5년, 1627)에 갔다. 아래 유승서(柳承瑞)에 이르기까지는 병사(兵使)로써 목사(牧使)를 겸했다. ○ 허완(許完) : 정묘년(인조 5년, 1627)에 와서 무진년(인조 6년, 1628)에 갔다. ○ 박상(朴瑺) : 무진년(인조 6년, 1628)에 와서 경오년(인조 8년, 1630)에 갔다. ○ 이익(李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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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특(姜智特) : 참의(參議) 강우(姜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품이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고 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절행으로 고을에 울렸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영매하여 굳세고 뛰어난 것이 사람들의 경탄할 바”라고 했다. ○ 하경소(河鏡昭) : 자는 공극(公極)이요, 호는 동야(東野)니 각재(覺齋) 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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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현(李胤玄) : 자는 시로(時老)요, 호는 영모당(永慕堂)이니 매월당(梅月堂) 이하생(李賀生)의 증손이다. 18세 때에 부친을 모시고 산간 마을에서 천연두를 피하더니 갑자기 어느 날에 도적이 들어와 부친을 해치려고 했다. 윤현이 몸으로 날개처럼 덮어서 겨우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온몸에 부상을 입고 이어 병을 얻어 의원을 찾아 약을 구하여 8년을 견디다 마침내 천수를 마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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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륜(河崙) : 고려 말에 과거에 합격해 중앙과 지방에 역임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재질이 있었다. 태종(太宗)을 도와 정사좌명공신(定社佐命功臣)이 되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으로 봉했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를 문충공(文忠公)이라 했다. 『호정집(浩亭集)』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하연(河演) : 하윤원(河允源)의 손자이다.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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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목 사천군 장암리에 설치된 조창(漕倉). 경상도는 1403년(태종 3) 조운 영역에서 제외된 뒤로 경강선(京江船)의 주요 활동 지역이었다. 그러나 항로가 험하여 해난사고가 많았고, 사선(私船) 선가(船價)의 지급도 막대하였다. 또 왕권을 확립하려고 여러 제도 개혁을 추구하던 영조는 세곡 운송제의 문제점을 조운 기능의 강화로 해결하려고 관선조운제(官船漕運制)를 복구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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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고려 문종 때 송나라에서 건너 와서 참지정사를 지낸 신수(愼修)를 시조로 하는 단일본이다. 신승선이 임영대군의 사위가 되고 세조의 공신으로 거창군에 봉하여졌으며 벼슬은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신수근은 좌의정, 신수겸은 개성유수, 신수영은 형조판서에 이르렀으나 중종반정으로 일문이 화를 당하게 되니 후손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숨어살게 되었다. 신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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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섬유를 생산하거나, 실크 등의 섬유를 원료로 쓰는 가공품을 생산하는 산업. 진주지역의 견직공업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인 기록은 없다. 전통적인 기법의 견직생산에 대한 기록은 구한말에 진주 인근의 산청지역에 그 기록이 남아 있으며, 근대식 견직공장이 설립된 것은 1910년대이다. 1920년대에 추겸호가 동양염직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30년대에는 일본인 오다나까가 오다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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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경상대학교 문천각 소장의 행정문서집. 경상대학교 문천각에 소장되어 있는 호구단자와 준호구철은 김상조가 여러 가문에 잡다하게 널려 있던 자료들을 모아 편철한 것으로 총 6책이다. 제1책에는 남해 거주 남원양씨 가문의 호구단자·준호구 22건(19세기), 곤양·삼가 거주 청주한씨 가문의 호구단자·준호구 6건(19세기), 여수·사천·곤양 거주 남평문씨 가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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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총칭하는 말. 고개에는 전설과 그 지역의 지명과 관련된 명칭이 붙어 있다. 고개와 관련된 지명은 ‘고개’, ‘재’, ‘티’, ‘치’, ‘개’ 등이 있다. 『진주시사』와 『진양군사』를 중심으로 진주시의 고개를 살펴보면 대략 42곳으로 파악된다. 이들 고개를 위치와 명칭 유래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막고개는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대평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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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졸업하거나 이와 동등한 학력을 가진 자가 진학하는 중등학교. 고등학교의 분류는 교육과정에 따라 일반계와 실업계로 구분되며, 일반계와 실업계를 함께 운영하는 종합고등학교가 있다. 그 외에도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등의 특수한 목적으로 설립되어 운영되는 특수목적고가 있으며, 수업연한은 3년으로 규정되어 있다. 고등학교 교육의 목적과 관련하여, 중견국민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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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 진주는 통일신라 말부터 후백제를 거치면서 강주(康州)로 불리다가 940년(태조 23)에 진주로 개칭되었고,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 진주목이 되었다. 이에 앞서 광종 때에는 진주향교가 창설되어 진주의 학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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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의 공북문 성벽에 새겨진 글귀. 공북문 성벽 석각은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의 북쪽문인 공북문(拱北門) 서쪽 성기에 새겨져 있는 글씨로 가로 80㎝, 세로 25㎝ 크기의 석재에 ‘康熙十九年山陰馬兵中哨泗川昆陽河東丹城咸陽六官一哨’라고 씌어져 있다. 이는 진주성의 수축을 담당하였던 구역의 표시를 나타낸다. 조선시대의 축성 기록을 살펴보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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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나 개천, 또는 언덕과 언덕 사이에 건너다닐 수 있도록 걸쳐 놓은 시설. 2009년 12월 31일 현재 진주시의 교량은 전체 237개소이고, 총연장 22,077.15m이다. 이 중 고속국도 상에는 52개소 7,792m, 일반국도 상에는 72개소 5,480.80m, 지방도에는 52개소 5,813.20m, 시도 상에는 61개소 2,991.55m가 각각 있다. 이들 교량 중 가장 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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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기차·배·비행기 등을 이용하여 사람이 오고 가거나 짐을 실어 나르는 일. 진주시는 동쪽으로 마산시 및 함안군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사천시 및 고성군, 북쪽으로는 산청군 및 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진주시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교통의 결절지이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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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진주에서 조직된 영남 사림들의 친목단체. 섭리에 순응하고 이상적인 도학(道學)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사림파의 친목단체로 조직되었다. 지배층의 솔선수범과 근검절약을 신조로 삼았다. 1489년(성종 20), 진주목사 경임, 김해도호부사 이손(李蓀)[1439~1520], 창원도호부사 이영분(李永賁), 전 진주목 교수 김일손(金馹孫)[1464~1498], 조위(曺偉) 등을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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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 안동 출신이다. 아버지는 김진(金璡)이고, 동생은 김복일(金復一)이다. 1556년(명종 11)에 아우 김복일과 함께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1564년에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586년 나주 사직단(社稷壇)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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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남쪽의 통일신라[676~935]와 북쪽의 발해[698~926]가 양립하던 시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676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이후 935년까지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영토를 다스리게 된다. 한편, 통일신라 북방에는 698년 고구려의 장수 출신인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중국 길림성 돈화시 동모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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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던 운수업체. 일제강점기인 1917년 11월 마산~진주간 자동차 경영에 착수하였다. 1925년에는 진주에서 문산까지의 노선 영업 허가를 얻었으며, 1937년 11월에는 진주자동차조합을 사들여 영업을 개시함과 동시에 하동읍에서 옥종면을 경유, 진주까지 운행하는 하동~진주선도 양도받아 경영하였다. 1939년 2월에는 진교에서 노량에 이르는 11.7㎞의 노선도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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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마동면(馬洞面) 내촌동(內村洞)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주군 마동면(馬洞面) 내촌동(內村洞)을 내촌리(內村里)라 하였다. 내촌리는 진양호의 상류지역으로 북쪽은 남강이 진양호로 이어지고, 남쪽은 덕천강이 진양호로 유입되어 남북방향이 진양호와 접하고 있고, 북쪽은 200m 이상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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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와 산청군·사천시·하동군 일대를 흐르는 강. 『국역 진양지』에 “조흘산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 상류암을 거쳐 장항동(獐項洞)에 이르고 남쪽으로 흘러 삼장천이 되어 살천(薩川)과 더불어 양당촌(兩堂村) 앞에서 합하니 이를 덕천(德川)이라 이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에서 발원한 물과 지리산 계곡에서 흐르는 하천이 진주시 수곡면과 하동군 옥종면, 사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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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망경산 북쪽 남강과 연해 있는 벼랑(덤). 덤밑은 벼랑을 나타내는 진주 지역 방언인 ‘덤’의 밑이란 뜻이다. 원래는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서 내동면 독산마을로 통하는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이었으나, 국토 개발 계획에 의해 지금은 진주시와 경상남도 하동군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변이 되었다. 또한 이곳으로 진주시와 전라남도 순천시를 잇는 경전선 철로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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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차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큰 길. 진주는 역사적으로 서부 경상남도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도로 교통의 결절지이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동서 방향으로 남해고속국도와 남북을 연결하는 통영~대전 간 고속국도가 교차하고 있고, 2번 일반국도·3번 일반국도·33번 일반국도가 통과하는 영남과 호남 간 그리고 중부 지역과 남부 지역 간의 교통 요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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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에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하여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운동. 동학운동 당시 동학군과 일본군과의 대규모 격전이 있었던 곳은 진주 고승당산(高僧堂山)이었다. 고승당산은 해발 185m로, 일명 고시랑산 또는 고성산(高城山)이라 한다. 고승당산은 지표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동남쪽 들판은 덕천강을 경계로 하여 진주시 수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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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 있는 산. 망경산(望京山)이라고도 한다.『진양지』에는 “망진산은 주(州)의 남쪽 강변을 넘어 6리에 있다. 『동국지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망진(望晉)은 곧 망진(網鎭)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망경’이라는 명칭은 고려 때 어느 충신이 역적으로 몰려 귀양살이를 와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늘 이산에 올라와 북쪽(서울)을 바라보았다는 전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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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창촌리 명월마을 덕천강가의 동쪽 등성이에서 원내리로 넘어가는 고개. 대홍수 때 물이 솟아 고개를 넘어갔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아래로만 흐르는 물이 아니라 위로도 넘어간다는 뜻으로 이런 종류의 지명은 무너미 외에도 무네미, 무니미, 무내미, 물냉기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진주시에서 수곡면 소재지를 지나 하동 쪽으로 국도를 달려가면 창촌교가 있는데, 그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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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때의 의병.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자신(子愼), 호는 성광(醒狂)이다. 1579년(선조 12)진사에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불러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하동의 섬진강 쪽으로 출진했다가 이듬해인 1598년 진중에서 순직했다. 1605년 선무원종공신이 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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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삼을 삼으면서 부르는 노래. 삼베일은 전국적으로 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고성, 진주, 하동, 산청, 함양, 거창, 합천 등지는 지금도 삼베 일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만큼 부녀자들이 입에서 입으로 삼베일 소리를 전승시켜 오늘날도 불리어지고 있다. 거창 지역에서는 삼베일 소리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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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동(행정동)과 상봉서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이곳은 진주군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 지역이었으므로, 그 이름을 계승한 것이다. 원래 진주군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平居面) 상봉리라 하였다가 1918년 5월 1일 진주면에 편입되었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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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일부를 관할했던 행정동. 원래 이곳이 진주군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 지역이었으므로, 그 이름을 계승한 것이다. 옛날 진주군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 지역이었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平居面) 상봉리라 하였다가 1918년 5월 1일 진주면에 편입되었고,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인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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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일부를 관할했던 행정동. 본래 이 곳이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 지역이었으므로 그 이름을 계승한 것이다. 원래 진주군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平居面) 상봉리(上鳳里)라 하였다가 1918년 5월 1일 진주면에 편입되었고,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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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생산자로부터 재화를 구입하여 ‘최종 소비자 또는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할 자’에게 재화를 판매하는 사업. 경제상의 여러 현상에 대해서 상업이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그 개념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상업은 경제발전단계에 조응하여 변화·발전하여 온 사회적·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개념에 대한 완전한 정립은 명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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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성동 9-9번지[진양호로 532]에 있는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국 1997년 개국 이래, 지역공동체의 여론수렴과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많은 문화산업을 벌이고 있으며, 홈페이지 개설 등을 통해 지역민들의 목소리와 지역의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지역문화 발전과 계승에 힘쓰며, 지역 사회단체,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상호 교환할 수 있는 언로(言路)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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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을 사고 파는 거래장소. 시장의 개념은 학술적으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어 가격이 결정되는 장소 또는 메커니즘이라 정의된다. 시장의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되며 자본주의사회에서 그 종류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구체적인 특정한 장소에 있는 중앙도매시장, 증권거래소, 상품거래소 등은 구체적 시장이라 한다. 소매시장이나 공설시장도 포함되지만 이 경우는 보통 시장이라 한다. 그리고 경제가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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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의 법정리. 1914년 진주군 신풍면(新豊面) 상동(上洞)·하동(下洞)과 중동(中洞) 일부를 통합하여 신풍리(新豊里)라 하였다. 남강댐으로 수몰되기 전에는 신풍, 중촌, 풍호 등 3개 부락이었다. 신풍 141호, 중촌 56호, 풍호 66호, 계 263호였다. 대평면 내에서 제일 부유한 마을로서 고등 교육도 많이 받아 정계 또는 군인, 공무원·변호사 등 고위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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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유흥요. 이 노래는 부녀자들이 심심하거나 유흥의 분위기가 있을 때 부르는 노래로서 일명 ‘쌍금 쌍금 쌍가락지’라고도 한다. 노래를 부르는 시간과 장소가 특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대개 여흥을 즐기는 때에 이 노래를 부른다. 정확하게 언제 이 노래가 발생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랜 세월 동안 부녀자들의 입을 통하여 구비 전승하였으며, 진주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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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상대방의 샅바를 잡고 손과 발, 그리고 몸을 이용하여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우리나라 고유의 운동. 씨름은 우리나라에서 자생된 전통 민속놀이의 하나로, 우리나라 역사상 농경문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각력(角力)·각저(角抵)·각희(角戱)·상박(相搏)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기도 하였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놀이는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행해지고 있으나 그 방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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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서 전승되는 인물담. 1980년 8월 6일 류종목, 빈재황이 경상남도 진양군 수곡면 사곡리 식실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박순악(여, 당시 68세)이다. 하동 읍내에 여종엽이라는 양반이 있었다. 그는 큰 부자로 선심을 베풀어 인심도 얻었으며, 특히 주색(酒色)을 좋아해서 수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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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가차례면 하동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가차례면과 하동에서 집자하였다고 하나 그 출처는 명확하지 않다. 1914년 구한말 때의 진주군 가차례면(加次禮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을 통폐합하여 예하리(禮下里)라 하였다. 여기에 소속된 강주(康州)는 신라 경덕왕 16년(557년) 이후 전해져 온 진주의 고호(古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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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남강댐 발전소 바로 아래에 있는 다리. 교량의 길이는 100.0m, 폭은 11.0m, 높이는 8.0m이다. 경간의 수는 4개이며, 최대경간장은 25.0m이다. 총 차선 수는 상행성과 하행선 각기 1차선(9.0m)와 보도(2.0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PRC 슬래브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T형교각식이다. 설계하중은 DB-24.0이고,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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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중앙에 위치한 마을의 뒷산인 영봉산 주변의 산세와 암석의 형태가 용과 같은 형세라 하여 용암(龍岩)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을 통해 진주군 이반성면 용암동(龍岩洞), 간동(間洞), 하서동(荷西洞)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용암리(龍岩里)라 하였다. 동쪽은 영봉산[395m] 줄기가 이어져 해발고도 200m 내외의 산지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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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15일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성내1동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지방신문.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발행한 신문으로『황성신문(皇城新聞)』·『뎨국신문』·『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만세보(萬歲報)』·『대한민보(大韓民報)』 등이 있었으나 이는 모두 서울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한 중앙지였다. 나라의 기운이 일본의 침략으로 기울어지면서 직접 총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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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민중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조직하는 자위군.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외침을 많이 받아 고려·조선 시대까지 중요한 순간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이 일어났다. 특히 조선 말기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다. 의병의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준 것은 임진왜란·병자호란 양란의 의병과 조선 말기의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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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단에 위치한 면(面). 고려 현종 9년(1018)에 진주목 반성현으로 불렸고 이후 조선시대까지 반성현으로 불렸다. 이후 1864년(고종 1)에 반성면이라 하였다가 반성면이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지명으로 개칭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반성현(班城縣)이라 하다가 동면(東面) 반성리(班城里), 가수개리(柯樹介里), 정수개리(丁樹介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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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강탈 이후 1945년 광복에 이르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통치 시기.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뿐만 아니라 한국민족 말살정책을 강행하는 악랄한 정책을 집행하였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설치한 교통·통신시설은 비록 그것이 근대적인 시설이었다 하더라도 설치목적과 그 기능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그리고 대륙침략의 병참기지화에만 있었다. 이러한 식민지정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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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사원(士元), 호는 기옹(綺翁)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진사에 합격하고 호남으로부터 침곡(針谷)으로 옮겨와서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태계(台溪) 하진(河溍), 학포(學圃) 정훤(鄭暄)와 더불어 교유하면서 학문을 연마하고 문장을 서로 지어 주고받아 시문(詩文)이 제현(諸賢)의 문집 가운데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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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효자. 선산군수를 지낸 정임덕(鄭任德)의 아들이다. 공민왕 때 아버지의 임지인 하동에서 동생과 함께 변경 수비 임무를 맡고 있었다. 때마침 왜구가 갑자기 침입하자 동생 정손(鄭愻)과 함께 병석에 있는 아버지를 호위하여 모시고 피란 갈 때 왜구들이 뒤쫓아 와 해치려 하자, 말을 달려 공격을 하며 사력을 다해 물리쳤다. 그러나 동생 정손은 적의 칼에 찔려 젊은 나이에 죽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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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일대에서 일어났던 민간인 학살사건. 한국전쟁 중에 전국적으로 각 형무소에 수감 중이었던 공산주의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죄 없는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이 많이 발생하였다. 진주지역에서도 민간인들이 학살된 사건이 여러 발생하였으며, 그 중 하나가 정촌면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민군이 계속 남쪽으로 밀려오자 그들에게 합세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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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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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효자. 본관은 함안. 자는 인수(仁叟), 호는 횡구(橫溝). 아버지는 동몽교관에 증직된 조광식(趙匡植)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로 김석신(金錫信)의 딸이다. 자신의 호는 중국 북송 때 사상가 장횡거(張橫渠)의 ‘횡(橫)’자와 옛날 유방과 항우가 힘을 겨루었던 역사의 현장인 홍구(鴻溝) 땅 이름의 ‘구(溝)’자를 따서 지었다. 장횡거는 왕안석(王安石)과 뜻이 맞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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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絶對)의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여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한계를 갖는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에서 기인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고 믿는 절대자에게 의탁하여 현세에서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추구하고, 사후세계에서는 구원을 희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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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북동부에 위치한 면(面). 지수면 청원리에서 발원하는 지수천(智水川)에서 유래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용봉리(龍奉里), 청원리(淸源里), 승어산리(勝禦山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청원리와 승어산리는 용봉리에 합해져 이후로는 용봉리라 하였다. 고종 1년(1864) 이래로는 용봉면(龍奉面)이라 하다가 갑오경장 이후는 하봉면(下奉面),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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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댐과 남강댐에 의해 생긴 인공호수. 진주를 흐르는 남강의 근원은 둘이다. 하나는 지리산 북쪽에서 나오는데 경호강이라 부르며, 다른 하나는 지리산 남쪽에서 나오는데 덕천강으로 부른다. 이 두 강이 진주 시내 서쪽 광탄(光灘)[너우니]에서 합류하여 동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 제방을 쌓고 사천만으로 방수로를 뚫어 남강 하류의 홍수를 방지하자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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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에 있는 중생대 화석지. 진주 유수리의 백악기 화석산지는 진주 남강의 한 물줄기인 가화천 강바닥에서 발굴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495에 분포하고 있다. 유수리 지역은 진주 남강의 지류인 가화천의 하상이다. 하천의 직류를 위한 공사로 형성된 하상으로 가화천의 양안에는 2번 국도[북쪽 안]와 진주~사천간 지방도(남쪽 안)가 위치하고 있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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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 경상남도지방에서 차와 관련된 자연환경, 역사, 차인(茶人)들의 활동, 그리고 도구와 기물 등이 관련되어 이루어진 독특한 생활문화 풍토. 한자 ‘茶’는 ‘차’ 또는 ‘다’로 읽히나, 진주지방에서는 ‘차’로 많이 읽히므로 ‘차’로 쓰고자 한다. 차(茶, tea, cha)는 마시는 음료로써, 몸과 마음의 건강과도 관련되고, 자연과도 연관되면서 차생활·차예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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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농민군. 한반도를 둘러싼 청·일간 각축은 마침내 청일전쟁으로 진전되어 일제의 독점적인 지배가 시작되었다. 한편 보수적인 지배층은 심각한 상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가렴주구에 여념이 없었다. 1894년 9월 진주지역 농민군은 농민적 토지소유와 부패한 탐관오리를 추방하여 ‘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새로운 지배체제와 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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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진주 행정구역 명칭. 진주는 고려 초기 청주(菁州)라 하였다가 다시 강주(康州)로 환원하였고, 983년(성종 2) 2월 주제(州制)를 목(牧)으로 개혁하면서 진주는 전국 12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성종 14년(995) 9월 처음으로 전국에 10도를 두었는데, 이때 진주에는 산남도(山南道)가 설치되어 10주 37현을 통할했다. 현종 9년(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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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서민금융기관. 무진(無盡)이란 일정한 계좌수와 급부 금액(給付金額)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부금을 납입한 부금자(賦金子)에게 1계좌마다 추첨·입찰 등의 방법에 의하여 일정 금액을 급부하는 제도였다. 1914년 말 당시 서울에는 137조(組)의 무진강이 있었으며 무진구수(無盡口數)는 1,738구였다고 한다. 또한 1921년 7월 말 무진회사는 77개소에 이르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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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고종 32)부터 정부수립 후인 1949년까지의 진주 행정구역 명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거 그동안 시행해오던 8도제(道制)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府)로 구분하고, 그 아래에 336군(郡)을 설치하는 획기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그리하여 부에는 관찰사(觀察使)를 두고 군(郡)에는 군수(郡守)를 두었는데, 이때 진주에는 지금의 도격인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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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 진주시는 동쪽으로 창원시와 함안군,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사천시와 고성군, 북쪽으로 산청군·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부 경상남도의 거점 도시로, 2005년 10월 경상남도의 혁신 도시로 선정되었다. 경위도상으로 동경 127°53′ 52″~128°22′ 21″인 수곡면 원계리 동월마을에서 이반성면 발산리 내동마을까지이며, 북위 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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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장대동에 소재하는 시외버스터미널.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지인 진주의 교통체계 혁신을 위하여 1974년 11월 준공하였다.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리모델링 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진주시 중심부의 장대동 96-1번지[남강로 712]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남강이 2차선도로를 사이로 접해 있고, 논개로를 통하여 마산·부산 방면, 남명로를 통하여 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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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17세기 초에 이루어진 진주의 사찬(私撰) 지리지. 지리지는 수록된 공간 범위에 따라 전국지인 여지(輿誌)와 지방지인 읍지(邑誌)로 나눌 수 있다. 또 지리지를 편찬한 주체에 따라 국가기관에서 만든 관찬(官撰) 지리지와 개인이 편찬한 사찬 지리지로 나누어진다. 전국 단위의 지리지로는 『동국여지승람』이 대표적이다.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하게 편찬된 읍지는 전국 지리지인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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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소리는 진주지역의 교방을 중심으로 전승되던 가곡, 시조 등 소리와 동편제를 중심으로 한 판소리. 진주는 일찍부터 물산이 풍부하여 토착부호들이 많아 전통문화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성행했다. 또한 진주는 역사적으로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여서 일찍부터 교방이 설치되어 관 주도의 문화가 전파되었고, 가무가 발달하여 많은 명창이 배출되었다. 진주는 신라시대부터 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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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 소재하는 남강 위에 있는 다리. 교량의 길이는 284.0m, 폭은 24.0m, 높이는 11.0m이며, 경간의 수는 6개, 최대 경간장은 60.0m이다. 상행선과 하행선 각기 2차도(18.0m)와 보도(6.0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아치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아치식 교각이다. 설계하중은 DB-24, 통과하중은 43.2t이다. 1일 통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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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使徒)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소개된 것은 18세기 말엽이다. 당시 중국을 왕래하던 조선 사신들을 통해 시작된 중국의 선교사들과의 접촉으로 이루어졌다. 천주교의 정착은 직접적인 선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들은 실학운동에도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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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의 옛 지명 진주는 가야 지역으로 거열성(居列城)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는 삼국통일 과정에서 문무왕 3년(663) 2월에 거열성을 공취하여 거열주(居列州)라고 하였다. 신문왕 5년(685) 봄에 처음으로 9주를 정비하면서 거열주를 높여 청주(菁州)라 하고 대아찬 복세(福世)로 하여금 청주총관을 삼았다. 「삼국사기지리지」와 「고려사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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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추성원(秋成元)의 표창을 상신하고 답을 받은 문서. 추성원은 조선 후기 순조와 고종 때의 효자이다. 12~13살 때 부친 추민중(秋敏中)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허벅지 살을 베어 드렸고, 어머니 창원황씨가 병마에 고통당하자 산중을 헤매며 약초를 캐어 탕을 지어 올리고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소생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인근 하동과 곤양 주민들 서른 명이 천하에 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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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첨경(瞻卿), 호는 양정재(養正齋). 아버지는 대사헌에 증직된 설총(雪聰) 하철(河澈)이며, 어머니는 고령박씨 박신(朴紳)의 딸이다. 1664(현종 5) 하동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육례(六禮)에 통달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부친이 별세하자 예에 따라 상을 치르고 여막을 지켰는데, 모친에게 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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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1344년(충혜왕 복위 5) 과거에 급제한 후 1363년(공민왕 12) 전공정랑(典工正郞)으로 있으면서 홍건적의 침입을 막아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1등공신에 올랐다. 1375년(우왕 1) 전라도원수 겸 도안무사에 있으면서 임의로 정원 외의 연호군(煙戶軍)과 별민군(別民軍)을 두었다하여 파면 당하였다. 이때 후임으로 온 원수 유영(柳瑩)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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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의윤(義允), 호는 동료(東寮).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경운(河慶運)이며 어머니는 은진임씨(恩津林氏)로 임찬원(林纘源)의 딸이다. 부인은 진양정씨로 정주빈(鄭周贇)의 딸이다. 1830년(순조 30)에 출생하여 8세에 친상을 당하고 15세 때는 조부인 부용담(芙蓉潭) 하필룡(河弼龍)의 상을 당하면서도 법도에 한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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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호탄동에 있는 정부투자기관. 도로의 건설 및 유지·관리와 이와 관련된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도로 교통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9년 1월 17일 한국도로공사법이 공포되고, 같은 해 2월 15일 한국도로공사가 창립되었다. 이후 1988년 3월 2일에 부산, 창녕, 마산과 함께 한국도로공사 경남지사 진주지부가 발족하였다. 1995년 8월 10일 한국도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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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한국서예협회의 진주지역 지부. 진주와 인근 남해·하동·산청·함양·거창·합천·의령지역의 서예인들이 모여 민족예술과 서예의 향상 발전을 도모하고 서예가의 권익을 옹호하며 서예의 국제적 교류와 서예인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89년 3월 19일에 한국서예협회의 취지에 찬동하는 서예가들이 모여 진주지회 창립총회 결성대회를 개최하여 설립하였다.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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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까지의 한국전쟁 기간 중 진주지역에서 벌어진 사건. 한국전쟁은 민족의 비극으로서 우리 사회에 큰 피해와 흔적을 남겼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원인, 수행 주체와 성격에 관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중대한 쟁점이 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전쟁을 일으킨 책임 주체를 둘러싼 논란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통주의설과 수정주의설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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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1883년에 하동에서 출생하였고, 진주에서 활동한 동초 황현룡은 목단을 특히 잘 그린 한국화가이다. 소치 허유에게서 사사하고 의재 허백련과 교유하였다. 전국을 돌면서 전시회를 열었고, 일본 화단과도 활발한 교류를 벌였다. 서양화가 이우환(李禹煥)은 황현룡의 「금강산도」를 보고 사실적 유상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화풍을 이룬 작품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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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도자기 가마터. 효자리 가마터는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 위치한 조선시대에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로서 15~16세기 무렵 지방의 도자기 수급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985년 경주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하여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서 가마터의 흔적과 각종 도편이 쌓여진 퇴적층이 재확인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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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의 법정리. 선조 때 하경휘(河鏡輝)가 이 마을에 살면서 부모에 효성이 지극하고 동기간에 우애가 두터워서 이름난 효자동으로 동명(洞名)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때는 효우봉, 쇠우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14년 진주군 수곡면 효자동, 중전동, 하동, 요산동, 마동면 당촌동 각 일부를 합쳐 효자리라 하였다. 1917년 3월 15일 본면 효자리(孝子里) 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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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민영 방송국. 생동감 있고 깨어있는 방송을 통해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방송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60년대 초부터 당시 로타리 클럽 회장이던 정영수와 상공회의소 회장 최병주, 지역인사인 문해술, 부산 MBC 사장인 안성수 등이 주축이 되어 민간상업방송을 추진하여, 1967년 11월 10일 호출부호 HLAK, 주파수 1,320KHZ, 출력 10Kw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