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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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기필(崔琦弼) :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무과에 올라 봉사(奉事)가 되었더니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晋州城)에 들어왔다. 병사(兵使) 최경회(崔慶會)가 임금이 피난한 곳으로 계문을 올리니 본주의 판관(判官)을 삼았다. 성이 함락되어 순절했는데 계해년(영조 19년, 1743)에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추증되고 창렬사(彰烈祠)에 모셨다. ○ 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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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양씨(南原梁氏) : 효열부(孝烈婦). 승의랑(承義郞) 진양(晉陽) 강수제(姜壽齊)의 아내요, 찰방(察訪) 양장(梁樟)의 딸이다. 집에 있을 때는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나이 15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입에 넣어서 소생할 수 있었다. 시집을 가서는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과 공경을 다했다. 지아비가 죽자 양씨가 이르기를 “내가 지하로 따르고자 하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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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민(河潤民) : 진사다. ○ 손석윤(孫錫胤) : 자는 여선(汝善)이요, 계유년(인조 11년, 1633)에 진사에 올랐으니 본관이 밀양(密陽)이다. ○ 손지순(孫之順) : 자는 덕이(德而)요, 갑술년(인조 12년, 1634)에 진사에 올랐고 본관이 밀양(密陽)이다. ○ 조진(曺𣉮) : 갑술년(인조 12년, 1634)에 생원에 올랐고 본관이 창녕(昌寧)이다. ○ 성호정(成好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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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원(閔愿) : 자는 흥중(興仲)이요, 호는 석계(石溪)이며 본관이 여흥(驪興)이니 판서(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이다. 문과에 올라 직장(直長)이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면서 행실은 방정했으며 목표하는 것은 높으면서 뜻은 넓었다. 충주(忠州) 음성(陰城)으로부터 옮겨와 진주의 옥봉(玉峰)에 살았다. ○ 최원민(崔元敏) : 호는 죽계(竹溪)요, 본관이 삭녕(朔寧)이니 사간(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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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륜(河崙) : 고려 말에 과거에 합격해 중앙과 지방에 역임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재질이 있었다. 태종(太宗)을 도와 정사좌명공신(定社佐命功臣)이 되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으로 봉했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를 문충공(文忠公)이라 했다. 『호정집(浩亭集)』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하연(河演) : 하윤원(河允源)의 손자이다.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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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전해오는 물렛돌에 관한 전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 석계마을에 사천군(泗川郡)과 경계를 표시하는 돌이 하나 있다. 마을 사람들은 경계를 표시하였다고 해서 ‘돌곶이’ 또는 ‘돌꽂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더러는 돌이 장승처럼 서 있다고 해서 ‘돌장싱’이라고도 부른다. 「마고할미 물렛돌」 설화는 이 돌장승에 얽힌 마고할미의 전설로서 천지개벽 신화나 천지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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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목 사천군 장암리에 설치된 조창(漕倉). 경상도는 1403년(태종 3) 조운 영역에서 제외된 뒤로 경강선(京江船)의 주요 활동 지역이었다. 그러나 항로가 험하여 해난사고가 많았고, 사선(私船) 선가(船價)의 지급도 막대하였다. 또 왕권을 확립하려고 여러 제도 개혁을 추구하던 영조는 세곡 운송제의 문제점을 조운 기능의 강화로 해결하려고 관선조운제(官船漕運制)를 복구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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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쪽에 위치한 가호동(행정동)에 속한 법정동. 1914년 행정 구역 조정 과정에서 개양동과 장좌동을 합쳐 ‘가좌리’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원래 진주군 정촌면(井村面) 가좌동(加佐洞)·장좌동(莊佐洞), 내동면(奈洞面) 신촌동(新村洞)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을 통합하여 정촌면 ‘가좌리’라 하였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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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하며 가좌동과 호탄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법정동인 가좌동과 호탄동을 통합하면서 두 동의 이름을 따서 행정동인 ‘가호동’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진주시 행정 구역 개편(대통령령 제 6542호)에 의하여 정촌면 가좌리와 호탄리를 진주시에 편입시켜 행정동인 가호동이 형성되었다. 가호동 자체로만 보면 중앙부는 낮고, 동쪽과 서쪽이 높으며 남쪽은 비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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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위치한 기차역. 1925년 6월 1일 경전선 마산-진주간 구간이 개통되어,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53년 5월 25일 개양-사천간 선로가 개통됨으로써 비료 및 양회를 수송하였으며, 1965년 12월 7일 개양-삼천포간 진삼선이 개통되어 삼천포의 해산물을 수송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후 도로의 발달로 인해 여객 및 화물이 감소하여,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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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고려 문종 때 송나라에서 건너 와서 참지정사를 지낸 신수(愼修)를 시조로 하는 단일본이다. 신승선이 임영대군의 사위가 되고 세조의 공신으로 거창군에 봉하여졌으며 벼슬은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신수근은 좌의정, 신수겸은 개성유수, 신수영은 형조판서에 이르렀으나 중종반정으로 일문이 화를 당하게 되니 후손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숨어살게 되었다. 신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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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섬유를 생산하거나, 실크 등의 섬유를 원료로 쓰는 가공품을 생산하는 산업. 진주지역의 견직공업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인 기록은 없다. 전통적인 기법의 견직생산에 대한 기록은 구한말에 진주 인근의 산청지역에 그 기록이 남아 있으며, 근대식 견직공장이 설립된 것은 1910년대이다. 1920년대에 추겸호가 동양염직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30년대에는 일본인 오다나까가 오다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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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던 묘목조합의 진주지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서 시행한 조림계획의 주요정책의 일환으로 조림에 필요한 묘목의 재배와 원활한 묘목거래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당시 경상남도 묘포장에서는 묘목을 재배하여 각 군에 나누어 주었는데, 민간에서도 1912년경부터 소나무와 뽕나무 묘목을 재배하여 묘포장의 부족분을 보충하고 있었다. 이후 묘목 재배가 점점 활성화되자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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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경상대학교 문천각 소장의 행정문서집. 경상대학교 문천각에 소장되어 있는 호구단자와 준호구철은 김상조가 여러 가문에 잡다하게 널려 있던 자료들을 모아 편철한 것으로 총 6책이다. 제1책에는 남해 거주 남원양씨 가문의 호구단자·준호구 22건(19세기), 곤양·삼가 거주 청주한씨 가문의 호구단자·준호구 6건(19세기), 여수·사천·곤양 거주 남평문씨 가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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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 진주는 통일신라 말부터 후백제를 거치면서 강주(康州)로 불리다가 940년(태조 23)에 진주로 개칭되었고,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 진주목이 되었다. 이에 앞서 광종 때에는 진주향교가 창설되어 진주의 학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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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다고 하는 변한(弁韓) 12개 소국 중 하나. 삼한 중 변한에 있었던 12개 소국은 지금의 경상남도 전역과 경상북도 일부 지역에 산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중 고순시국의 위치를 진주 지역으로 비정했던 이병도의 견해와는 달리 정인보는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 지역으로, 천관우는 경상남도 사천 지역으로 각각 비정했다. 대체로 낙동강 본류를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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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의 공북문 성벽에 새겨진 글귀. 공북문 성벽 석각은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의 북쪽문인 공북문(拱北門) 서쪽 성기에 새겨져 있는 글씨로 가로 80㎝, 세로 25㎝ 크기의 석재에 ‘康熙十九年山陰馬兵中哨泗川昆陽河東丹城咸陽六官一哨’라고 씌어져 있다. 이는 진주성의 수축을 담당하였던 구역의 표시를 나타낸다. 조선시대의 축성 기록을 살펴보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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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가 빼어나 구경하기 좋은 명소. 진주는 자연환경적으로 남강이 굽이쳐 흐르고, 역사적으로 사천·남해·산청·함양·거창·합천·의령 등 경상남도 서부지방의 전통적 문화 중심지로서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인 진주시는 남해고속국도, 통영~대전간 고속국도, 경전선 철도, 사천공항 등이 입지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역사적으로 경제·사회·문화·교육의 중심권을 형성하고 있다.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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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을 채굴·제련하는 산업과 원료에 인공을 가하여 새로운 물품을 만드는 산업을 통칭하는 용어. 일상생활에 필요한 자재와 원료를 얻기 위해 지하자원을 캐내는 광업과 이를 원료로 하여 가공하는 공업을 통틀어 2차 산업이라고 한다. 광업은 역사가 오래된 기초산업으로서 인간의 문화발달의 역사는 광물의 채굴과 가공에 의한 금속, 비금속 및 광물성 연료의 사용기술의 진보와 함께 발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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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기차·배·비행기 등을 이용하여 사람이 오고 가거나 짐을 실어 나르는 일. 진주시는 동쪽으로 마산시 및 함안군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사천시 및 고성군, 북쪽으로는 산청군 및 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진주시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교통의 결절지이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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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長財) : ‘부자마을’이라는 뜻에서 장재실이라고 불린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장지(長智)라고도 불렀는데, 서기(瑞氣)로운 징조가 비친다, 선하고 신비함이 많다는 뜻이 있는 지초 지(芝)로 바꾸어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0년에 마을 이름을 바꾸면서 마을 총의에 의하여 다시 옛날 이름인 장재실로 부르게 되었다. ·천금산(千金山) : 장재마을을 감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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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진주에서 조직된 영남 사림들의 친목단체. 섭리에 순응하고 이상적인 도학(道學)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사림파의 친목단체로 조직되었다. 지배층의 솔선수범과 근검절약을 신조로 삼았다. 1489년(성종 20), 진주목사 경임, 김해도호부사 이손(李蓀)[1439~1520], 창원도호부사 이영분(李永賁), 전 진주목 교수 김일손(金馹孫)[1464~1498], 조위(曺偉) 등을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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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면오(勉吾). 목천(木川) 출생으로 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에 입사하였으며, 1581년에는 부평부사가 되었으나 구황(救荒)에 전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583년 이탕개(尼湯介)의 난 때 도순찰사 정언신(鄭彦信)의 막하 장수로 출정하여 공을 세웠다. 그 뒤 훈련원판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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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마동면(馬洞面) 내촌동(內村洞)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주군 마동면(馬洞面) 내촌동(內村洞)을 내촌리(內村里)라 하였다. 내촌리는 진양호의 상류지역으로 북쪽은 남강이 진양호로 이어지고, 남쪽은 덕천강이 진양호로 유입되어 남북방향이 진양호와 접하고 있고, 북쪽은 200m 이상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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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는 진주군 마동면(馬洞面) 당촌동(堂村洞) 지역이었으며, 이에 그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진주군 마동면 당촌동, 신풍면(新豊面) 중동(中洞), 곤양군 곤명면(昆明面) 본촌동(本村洞)의 일부를 통합하여 당촌리라 하였다. 당촌리는 진양호의 상류지역으로 남쪽은 덕천강, 북쪽은 남강과 진양호에 접하고 있다.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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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와 산청군·사천시·하동군 일대를 흐르는 강. 『국역 진양지』에 “조흘산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 상류암을 거쳐 장항동(獐項洞)에 이르고 남쪽으로 흘러 삼장천이 되어 살천(薩川)과 더불어 양당촌(兩堂村) 앞에서 합하니 이를 덕천(德川)이라 이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에서 발원한 물과 지리산 계곡에서 흐르는 하천이 진주시 수곡면과 하동군 옥종면, 사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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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차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큰 길. 진주는 역사적으로 서부 경상남도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도로 교통의 결절지이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동서 방향으로 남해고속국도와 남북을 연결하는 통영~대전 간 고속국도가 교차하고 있고, 2번 일반국도·3번 일반국도·33번 일반국도가 통과하는 영남과 호남 간 그리고 중부 지역과 남부 지역 간의 교통 요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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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에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하여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운동. 동학운동 당시 동학군과 일본군과의 대규모 격전이 있었던 곳은 진주 고승당산(高僧堂山)이었다. 고승당산은 해발 185m로, 일명 고시랑산 또는 고성산(高城山)이라 한다. 고승당산은 지표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동남쪽 들판은 덕천강을 경계로 하여 진주시 수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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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 망진산에 있는 봉수. 『경상도지리지』(在州南七里許 南望泗川縣地城隍堂烽火 相距十八里五十九步 北望廣濟山烽火 相距二十五里二百八十步), 『세종실록지리지』(在州南 南准泗川城隍堂 北准廣濟山), 『여지도서』(在州南十里 南應泗川鞍峴 北報州廣濟 相距四十里)에 각기 기록되어 있다. 망진산봉수는 남쪽의 사천 안현산봉수(鞍峴山烽燧)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아서 북쪽에 있는 진주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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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의 민족 예술인들이 광복을 맞이하여 1945년에 설립하였던 향토문화단체. 문화건설대는 1945년 광복을 맞아 설창수, 박세재, 박생광 등이 발기하여 조직되었고, 민중의 계몽과 진주지역의 향토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한 단체이다. 문화활동을 통해 민중을 위무하고, 올바른 민족사관의 수립에 기여하여 민족의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설립되었다. 설립 초기에는 문화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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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북부에 위치한 면(面). 전설에 의하면 세 고을(동향, 오방, 상미)로 흐르는 세천(細川)이 배암처럼 너울거려 흐르고 있어 지나가던 어느 스님이 사천(蛇川)이라 이름지어 부르다가 지역에서 연도는 알 수 없으나(융희 2년경으로 추정) 뜻있는 선비들이 사(蛇)는 혐오감을 준다 하여 아름다울 미(美)자를 붙여 미천이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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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봉(熢: 횃불), 낮에는 수(燧: 연기)로써 급보를 전하던 통신방법. 봉수는 전근대시대에 변경의 급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해당 지역의 영진(營鎭)에도 알려 적의 침략에 대비했던 통신제도로서 민간통신으로는 활용되지 못했고 단지 군사통신으로만 사용되었다. 봉수제의 유래는 오래된 듯하며, 중국에서는 25~27년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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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 삼국시대는 신라의 건국(서기전 57년), 고구려의 건국(서기전 37년), 백제의 건국(서기전 18년)에서 시작하여 백제의 멸망(660년), 고구려의 멸망(668년)까지의 약 700여년을 말한다. 이 시기 진주는 처음 백제의 영토에 편입되어 거열성(居列城)이라 불렸다. 백제는 475년(개로왕 21) 9월에 고구려의 침공으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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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생산자로부터 재화를 구입하여 ‘최종 소비자 또는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할 자’에게 재화를 판매하는 사업. 경제상의 여러 현상에 대해서 상업이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그 개념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상업은 경제발전단계에 조응하여 변화·발전하여 온 사회적·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개념에 대한 완전한 정립은 명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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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성동 9-9번지[진양호로 532]에 있는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국 1997년 개국 이래, 지역공동체의 여론수렴과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많은 문화산업을 벌이고 있으며, 홈페이지 개설 등을 통해 지역민들의 목소리와 지역의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지역문화 발전과 계승에 힘쓰며, 지역 사회단체,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상호 교환할 수 있는 언로(言路)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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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소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전기의 분묘군. 소곡리 유적은 진주시 정촌면 소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전기의 분묘군이다. 9기의 조선시대 묘가 조사되었는데, 봉분은 양호하게 남아 있는 상태이며, 1기 축조방식을 보여주며 형태도 비슷하다. 4호묘와 5호묘, 8호묘와 9호묘는 유구 축조방식과 유물 출토양상으로 보아 친연 관계의 묘일 가능성이 높다. 청동수저, 장도, 뒤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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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을 사고 파는 거래장소. 시장의 개념은 학술적으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어 가격이 결정되는 장소 또는 메커니즘이라 정의된다. 시장의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되며 자본주의사회에서 그 종류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구체적인 특정한 장소에 있는 중앙도매시장, 증권거래소, 상품거래소 등은 구체적 시장이라 한다. 소매시장이나 공설시장도 포함되지만 이 경우는 보통 시장이라 한다. 그리고 경제가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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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상대방의 샅바를 잡고 손과 발, 그리고 몸을 이용하여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우리나라 고유의 운동. 씨름은 우리나라에서 자생된 전통 민속놀이의 하나로, 우리나라 역사상 농경문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각력(角力)·각저(角抵)·각희(角戱)·상박(相搏)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기도 하였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놀이는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행해지고 있으나 그 방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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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남강댐 발전소 바로 아래에 있는 다리. 교량의 길이는 100.0m, 폭은 11.0m, 높이는 8.0m이다. 경간의 수는 4개이며, 최대경간장은 25.0m이다. 총 차선 수는 상행성과 하행선 각기 1차선(9.0m)와 보도(2.0m)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구조 형식은 PRC 슬래브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T형교각식이다. 설계하중은 DB-24.0이고,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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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미(五美)라는 지명은 마을 서쪽에 가재가 춤을 추는 오무형(聱舞形)의 명산이 있어 여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1914년 진주군 오산면 삼항동 오미동, 묵곡동, 명석면 외팔미동, 대평면 대평동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오미리(五美里)라 하였다. 오미리는 진양호의 상류지역으로 북쪽의 검무봉[289.4m]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이 산지로 이어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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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15일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성내1동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지방신문.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발행한 신문으로『황성신문(皇城新聞)』·『뎨국신문』·『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만세보(萬歲報)』·『대한민보(大韓民報)』 등이 있었으나 이는 모두 서울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한 중앙지였다. 나라의 기운이 일본의 침략으로 기울어지면서 직접 총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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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강이(剛而), 호는 구암(龜巖). 이담(李湛)의 아들이다. 1536년(중종31) 진사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에 보임되었다. 다음해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예조정랑을 거친 뒤 연로한 부모 봉양을 위해 경상도 선산부사로 나갔다가 1552년(명종7) 사성, 이듬해 청주목사를 지냈다. 이때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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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1년 간행된 이정의 시문집. 『귀암집(龜巖集)』은 1641년(인조 19)과 1749년(영조 25) 및 1902년(고종 39) 등 세 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다. 진주 동산리 간암 박태형 가문 소장 『귀암집』은 1641년에 간행된 초간본이다. 2011년 4월 28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13호로 지정되었다. 귀암(龜巖) 이정(李楨)[1512~1571]은 조선 전기 중종과 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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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자무(子武). 이구암(李龜岩)의 손자이며, 이응인(李應寅)의 아들이다. 기질이 순미하고 천성이 효우스러웠으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생원과 진사를 함께 합격하였다. 할아버지가 종기를 앓아 병세가 매우 위중해지자 이호변이 항상 입으로 그 농즙(濃汁)을 빨아서 종기를 낳게 하였다.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응분의 보상을 받지 못하니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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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강탈 이후 1945년 광복에 이르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통치 시기.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뿐만 아니라 한국민족 말살정책을 강행하는 악랄한 정책을 집행하였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설치한 교통·통신시설은 비록 그것이 근대적인 시설이었다 하더라도 설치목적과 그 기능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그리고 대륙침략의 병참기지화에만 있었다. 이러한 식민지정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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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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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絶對)의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여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한계를 갖는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에서 기인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고 믿는 절대자에게 의탁하여 현세에서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추구하고, 사후세계에서는 구원을 희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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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와 삼천포 사이에 건설되었던 철도 노선. 진삼선 철도 건설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부터 계획되었으나 태평양전쟁과 해방으로 공사가 지연되다가 한국전쟁 후 1953년 5월 진주 개양역[현재 진주시 가좌동 소재]과 사천역 간 10.5㎞가 개통되었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1965년 12월 27일 삼천포까지 29.1㎞의 진삼선이 개통되었다. 진삼선의 개통으로 삼천포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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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댐과 남강댐에 의해 생긴 인공호수. 진주를 흐르는 남강의 근원은 둘이다. 하나는 지리산 북쪽에서 나오는데 경호강이라 부르며, 다른 하나는 지리산 남쪽에서 나오는데 덕천강으로 부른다. 이 두 강이 진주 시내 서쪽 광탄(光灘)[너우니]에서 합류하여 동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 제방을 쌓고 사천만으로 방수로를 뚫어 남강 하류의 홍수를 방지하자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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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에 있는 중생대 화석지. 진주 유수리의 백악기 화석산지는 진주 남강의 한 물줄기인 가화천 강바닥에서 발굴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495에 분포하고 있다. 유수리 지역은 진주 남강의 지류인 가화천의 하상이다. 하천의 직류를 위한 공사로 형성된 하상으로 가화천의 양안에는 2번 국도[북쪽 안]와 진주~사천간 지방도(남쪽 안)가 위치하고 있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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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육수에 메밀국수를 말아서 만든 경상남도 진주의 향토음식. 진주 인근의 산간지역에서는 냉면의 주원료인 메밀 재배가 성행하였기 때문에 예로부터 메밀국수를 즐겨 먹었다. 이에 영향을 받아 진주에서는 이를 고급화한 냉면을 개발하여 권력가나 재력가들이 야참음식으로 즐겨 먹었는데, 조리하는 방식도 독특하여 진주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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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초전동에 있는 농산물 도매시장. 농산물의 유통구조 개선과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질서 확립을 통하여 신선한 농산물을 적기에 공급하고 적정가격을 유지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하고 나아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1995년 12월 29일에 진주농산물도매시장 건설 기본계약을 체결하고, 실시설계 용역에 착수하였다. 1996년 7월 15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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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가쓰타[勝田伊助]가 1940년 진주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책. 가쓰다가 1913년 사천 선진항을 통하여 진주에 온 뒤 머물러 살면서 진주에 관한 기록을 정리한 책이다. 『진주대관』에는 1919년의 3·1만세운동과 중일전쟁 등의 역사적 사건, 남강 치수사업과 경남도청 이전 반대운동, 진주지역의 인구·행정직제·상공업·종교·교통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모두 20개의 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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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서민금융기관. 무진(無盡)이란 일정한 계좌수와 급부 금액(給付金額)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부금을 납입한 부금자(賦金子)에게 1계좌마다 추첨·입찰 등의 방법에 의하여 일정 금액을 급부하는 제도였다. 1914년 말 당시 서울에는 137조(組)의 무진강이 있었으며 무진구수(無盡口數)는 1,738구였다고 한다. 또한 1921년 7월 말 무진회사는 77개소에 이르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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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고종 32)부터 정부수립 후인 1949년까지의 진주 행정구역 명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거 그동안 시행해오던 8도제(道制)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府)로 구분하고, 그 아래에 336군(郡)을 설치하는 획기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그리하여 부에는 관찰사(觀察使)를 두고 군(郡)에는 군수(郡守)를 두었는데, 이때 진주에는 지금의 도격인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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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포진지. 진주성 포루는 진주성을 방어하는 포진지로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내성의 포루는 3곳이니 삼가, 의령, 곤양 등 3읍의 소속”이고, “외성의 포루는 9곳이니 진주, 단성, 초계, 거창, 사천, 함양, 남해, 합천 등 8읍 소속”이라고 하였다. 1607년(선조 40)에 김태허(金太虛)에 의해 진주성 내외성에 포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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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 진주시는 동쪽으로 창원시와 함안군,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사천시와 고성군, 북쪽으로 산청군·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부 경상남도의 거점 도시로, 2005년 10월 경상남도의 혁신 도시로 선정되었다. 경위도상으로 동경 127°53′ 52″~128°22′ 21″인 수곡면 원계리 동월마을에서 이반성면 발산리 내동마을까지이며, 북위 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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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장대동에 소재하는 시외버스터미널.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지인 진주의 교통체계 혁신을 위하여 1974년 11월 준공하였다.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리모델링 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진주시 중심부의 장대동 96-1번지[남강로 712]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남강이 2차선도로를 사이로 접해 있고, 논개로를 통하여 마산·부산 방면, 남명로를 통하여 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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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17세기 초에 이루어진 진주의 사찬(私撰) 지리지. 지리지는 수록된 공간 범위에 따라 전국지인 여지(輿誌)와 지방지인 읍지(邑誌)로 나눌 수 있다. 또 지리지를 편찬한 주체에 따라 국가기관에서 만든 관찬(官撰) 지리지와 개인이 편찬한 사찬 지리지로 나누어진다. 전국 단위의 지리지로는 『동국여지승람』이 대표적이다.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하게 편찬된 읍지는 전국 지리지인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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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使徒)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소개된 것은 18세기 말엽이다. 당시 중국을 왕래하던 조선 사신들을 통해 시작된 중국의 선교사들과의 접촉으로 이루어졌다. 천주교의 정착은 직접적인 선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들은 실학운동에도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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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녕최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사설서(司設署) 영(令)을 지낸 최수명(崔守明)이고, 어머니는 숙인(淑人) 진강정씨(晉康鄭氏)이며, 부인은 숙인(淑人) 서흥김씨(瑞興金氏)이다. 1349년(고려 충정왕 1)에 태어나 13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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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호탄동에 있는 정부투자기관. 도로의 건설 및 유지·관리와 이와 관련된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도로 교통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9년 1월 17일 한국도로공사법이 공포되고, 같은 해 2월 15일 한국도로공사가 창립되었다. 이후 1988년 3월 2일에 부산, 창녕, 마산과 함께 한국도로공사 경남지사 진주지부가 발족하였다. 1995년 8월 10일 한국도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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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까지의 한국전쟁 기간 중 진주지역에서 벌어진 사건. 한국전쟁은 민족의 비극으로서 우리 사회에 큰 피해와 흔적을 남겼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원인, 수행 주체와 성격에 관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중대한 쟁점이 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전쟁을 일으킨 책임 주체를 둘러싼 논란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통주의설과 수정주의설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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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 차현마을에서 전승되는 도선에 의해 혈 끊긴 산에 관한 설화. 혈 끊은 산 설화는 실재하는 특정 지역을 증거로 들어 구술한 지역적 전설이며, 자연 환경의 유래를 설명한 설명적 전설이다. 내용상 풍수지리(風水地理) 사상과 관련된 풍수 설화이며, 단맥설화(斷脈說話)이다. 단맥 설화의 일반적인 전개는 우리나라에 인재가 태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민족이 산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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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호탄동에 소재하는 공원. 공원의 공식적인 명칭은 없지만, 오래 전부터 호탄동 개양I.C 부근에 있는 고속도로 주변의 조경을 목적으로 조성된 묘포장을 중심으로 한 녹지대를 동의 이름을 따 ‘호탄공원’으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소유권과 관할권이 모두 한국도로공사에 있기 때문에 시청이나 동사무소에서 공원으로 지정하여 공식적인 이름을 정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호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