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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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여신(成汝信) : 자는 공실(公實)이요, 호는 부사(浮査)며, 우윤(右尹) 성두년(成斗年)의 아들이니 가정(嘉靖) 병오년(명종 1년, 1546)에 나서 만력(萬曆) 기유년(광해군 1년, 1609)에 생원과 진사의 두 시험에 합격했다. 일찍이 남명(南冥)과 구암(龜巖)의 두 문하에서 유학하여 경의(敬義)의 지결(旨訣)을 얻어듣고 종신토록 마음에 깊이 새겼다. 서책은 읽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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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특(姜智特) : 참의(參議) 강우(姜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품이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고 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절행으로 고을에 울렸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영매하여 굳세고 뛰어난 것이 사람들의 경탄할 바”라고 했다. ○ 하경소(河鏡昭) : 자는 공극(公極)이요, 호는 동야(東野)니 각재(覺齋) 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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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역(梁嶧) : 호는 운곡(雲谷)이요,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대사간(大司諫) 양사귀(梁思貴)의 셋째 아들이다. 기유년(세종 11년, 1429)에 사마시에 합격해 연일진병마첨절제사(延日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한데다가 뜻이 멀고 행실이 높아서 안과 밖에서 추중(推重)되었다. 단성(丹城)으로부터 진주 운곡(雲谷)에 옮겨와서 살았다. ○ 하공효(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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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륜(河崙) : 고려 말에 과거에 합격해 중앙과 지방에 역임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재질이 있었다. 태종(太宗)을 도와 정사좌명공신(定社佐命功臣)이 되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으로 봉했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를 문충공(文忠公)이라 했다. 『호정집(浩亭集)』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하연(河演) : 하윤원(河允源)의 손자이다.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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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전해오는 부녀자들이 유흥 시간에 모여 앉아 부른 노래. 「개떡노래」는 언제부터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진주시 인근의 통영시나 의령군에서도 불리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모작으로 보리 농사를 하는 영남의 여러 지역에서 양식이 부족할 때 보릿겨로 만든 떡을 먹으면서 불렀던 노래로 보인다. 1980년 8월 3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당시 경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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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중(汝中), 호는 매촌(梅村). 호조참의에 추증된 임계(臨溪) 강심(姜深)의 아들이다. 1560년(명종 27)에 출생하여 1627년(인조 5)에 별세한 무인으로, 일찍이 무예를 익혀 같은 시대에 무인으로 활약한 정기룡(鄭起龍)·주몽룡(朱夢龍)과 함께 ‘3룡(三龍)’으로 불렸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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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우도의 병무를 관할하던 관서. 조선 전기에는 경상도에 3명의 병마절도사(병사)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관찰사가 겸임했다. 그리고 낙동강을 기준삼아 경상도를 동서로 나눈 군사구역으로서 좌도와 우도를 설정해 좌병사의 병영은 울산에 두고 우병사의 병영은 창원의 합포(지금의 마산)에 두었다. 우병영이 있던 합포영이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분탕되면서 병영이 둘만한 자리가 못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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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재화(財貨)를 획득하고 이용하는 활동. 일반적으로 경제산업이란 인간의 공동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관계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을 가리킨다. 보통, 농업·공업·수산업·임업·광업 등을 지칭하나, 넓게는 생산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상업·금융업·서비스업 등도 포함시킨다. 진주시는 경상남도 지역의 중심도시로서 산청군·의령군·함안군·고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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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가 빼어나 구경하기 좋은 명소. 진주는 자연환경적으로 남강이 굽이쳐 흐르고, 역사적으로 사천·남해·산청·함양·거창·합천·의령 등 경상남도 서부지방의 전통적 문화 중심지로서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인 진주시는 남해고속국도, 통영~대전간 고속국도, 경전선 철도, 사천공항 등이 입지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역사적으로 경제·사회·문화·교육의 중심권을 형성하고 있다.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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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기차·배·비행기 등을 이용하여 사람이 오고 가거나 짐을 실어 나르는 일. 진주시는 동쪽으로 마산시 및 함안군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사천시 및 고성군, 북쪽으로는 산청군 및 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진주시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교통의 결절지이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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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진주에서 조직된 영남 사림들의 친목단체. 섭리에 순응하고 이상적인 도학(道學)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사림파의 친목단체로 조직되었다. 지배층의 솔선수범과 근검절약을 신조로 삼았다. 1489년(성종 20), 진주목사 경임, 김해도호부사 이손(李蓀)[1439~1520], 창원도호부사 이영분(李永賁), 전 진주목 교수 김일손(金馹孫)[1464~1498], 조위(曺偉) 등을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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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함양군·산청군·의령군·함안군 일대를 흐르는 하천. 경상남도 거창군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진주시·함양군·산청군·의령군·함안군을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총 유로는 185.6㎞에 달한다. 남강은 산간 곡저를 흐르면서 함양군 유림면에서 위천을 합류하고, 산청군 생초면에서 임천을, 진주시 대평면에서 덕천강과 진주시 금산면에서 영천강을, 함안군 법수면에서 함안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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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차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큰 길. 진주는 역사적으로 서부 경상남도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도로 교통의 결절지이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동서 방향으로 남해고속국도와 남북을 연결하는 통영~대전 간 고속국도가 교차하고 있고, 2번 일반국도·3번 일반국도·33번 일반국도가 통과하는 영남과 호남 간 그리고 중부 지역과 남부 지역 간의 교통 요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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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재. 동면서재는 1566년(명종 21)에 박승임(朴承任)[1517~1586]이 진주목사로 부임하여 동서남북 각 면에 서재(書齋)를 설치하였는데, 그중에서 문산면 서지골에 세운 것을 말한다. 박승임은 본관은 반남, 자는 중포(重圃), 호는 소고(嘯皐)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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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일원에서 행하여지는 동제. 풍신제는 영남지방과 강원도, 또는 기타 해안지방에서 음력 2월 초하루부터 스무날 사이에 풍신인 영등할머니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집에서 지낼 경우에는 집집마다 부엌이나 뒤뜰에 제단을 차리고, 폭풍우의 피해를 면하여 주고 집안 식구에게 복을 내려 주기를 빈다. 명칭은 ‘영동할만네’, ‘풍신할만네’, ‘영동바람’, ‘영동(등)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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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서재. 북면서재는 1566년(명종 21)에 박승임(朴承任)[1517~1586]이 진주목사로 부임하여 동서남북 각 면에 서재(書齋)를 설치하였는데, 이중에서 집현면에 세운 것이 북면서재이다. 박승임(朴承任)[1517~1586]은 본관 반남(潘南), 자 중포(重圃), 호 소고(嘯皐)로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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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진주는 가야시대에 고령가야의 고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거열성으로, 신라시대에는 거열주, 청주, 강주로 개칭되었다. 고려 건국 후 940년(태조 23년)에 처음으로 진주로 개칭되었으며, 983년(성종 2년)에 전국 12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1896년(고종 33년)에는 전국을 13도로 개편할 때 진주는 경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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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수호신으로 산신을 모셔놓은 신당. 우리민족 최초의 산신은 단군이다. 왜냐하면 『삼국유사』「고조선조」에 따르면 단군이 아사달에 들어가서 산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사달은 한문으로 조산(朝山)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산신은 일반적으로 남성이면서 나이가 많은 노인으로 형상화된다. 그러나 드물기는 하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듯이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의 어머니인 선도산(仙桃山) 신모(神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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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서재. 박승임(朴承任)[1517~1586]은 본관은 반남, 자는 중포(重圃), 호는 소고(嘯皐)로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지낸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조좌랑 등을 거쳐 정언(正言)을 지내고, 소윤(小尹)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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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의병장. 경상남도 양산(梁山) 출생으로, 원래 의원으로서 고향에서 의업(醫業)에 종사하다가 1907년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이 체결되어 군대가 해산되고, 고종이 양위(讓位)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진 직후인 1907년 12월 임진강·한탄강 유역에서 활동 중이던 의병장 허위(許蔿) 휘하에 들어갔다. 1907년 12월 허위로부터 영남으로 내려가 의병을 일으키라는 명을 받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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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로서 신문지라는 대중매체를 통하여 정기적으로 뉴스나 정보를 제공하는 문화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은 1883년 10월 31일 창간된 『한성순보』이다. 이 신문은 중앙정부기관에서 발행한 신문으로 국민들에게 외국의 사정과 개화사상을 널리 알리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반면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신문은 1909년 10월 15일에 진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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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회원(會元). 기묘명현(己卯名賢)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며, 대사성을 지낸 양응정(梁應鼎)의 아들이다. 1561(명종 16)에 태어나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경서(經書)에만 전심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과 끝까지 항전하다가 진주성전투에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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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특정한 연희(演戱)의 장소에서 관객을 앞에 두고 극본 속의 인물로 분장하여 몸짓·동작·말로써 창출해 내는 종합예술.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연극의 원류를 민속극인 가면극(假面劇, 탈놀이), 인형극(人形劇, 꼭두각시놀이)과 판소리[唱]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가면극의 문헌상 첫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오는 최치원(崔致遠)의 절구시 「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에서 읊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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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와 전라남도 순천시 일대에서 공동으로 개최되는 연극예술 축제. 영호남연극제는 지역적으로 인접해 있으며 문화예술의 정서 또한 유사한 남도문화권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진주시와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동서화합과 지역연극의 발전을 위하여 2000년부터 격년제로 개최되는 연극예술 축제이다. ‘훈훈한 정, 작은 만남’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으며, 영호남 지역의 연극 교류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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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서재. 박승임(朴承任)[1517~1586]은 본관은 반남, 자는 중포(重圃), 호는 소고(嘯皐)로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지낸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조좌랑 등을 거쳐 정언(正言)을 지내고, 소윤(小尹)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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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를 개조(開祖)로 하는 전통시대의 대표적인 사상. 유교의 교리는 곧 인의(仁義)와 도(道)와 수기(修己), 치인(治人)에 귀결된다.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의 오경(五經)과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사서(四書)는 유교의 중요한 경전이다. 공자 이후 유교가 천하에 행하여져 여러 학파와 함께 일어났으나 증자(曾子), 자사(子思)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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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논개에 관한 유흥요. 이 노래는 본래 진주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나 세월이 지나면서 전국적으로 전파되어 전승되고 있다. 전파 범위가 확장된 만큼 노랫말도 다양하게 전개되었는데, ‘진주 기생 의암이가···’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가장 원형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 노래의 정확한 발생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노랫말에 ‘진주 기생 의암’이라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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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진지(鎭之). 군수를 지낸 이호약(李好約)의 아들이다. 1557년(명종 12) 출생하여 1608년(선조 41) 51세로 별세할 때까지 무인으로 활약하였으며, 특히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웠다. 1584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1592년 곤양군수가 되었는데, 때마침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영남 일대에 침입해오자 선봉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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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의 대표적인 현대음악가. 이상근(李相根)[1922~2000]은 1922년 1월 10일에 경상남도 진주시 봉래동 176번지에서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한 아버지 이봉길과 어머니 탁방순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일제 강점기는 물론 광복 이후에도 교사로 근무하면서 작곡활동을 겸하였고, 한국의 현대음악을 주도하였다. 부인은 이창순이며, 이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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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수(子修), 호는 신암(新菴). 참봉을 지낸 이공량(李公亮)의 아들이며, 영남의 대학자인 조식(曺植)은 그의 외숙이다. 1524년(중종 19)에 태어나 1549년(명종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에 제수되었다. 1554년 사간원 정언이 되었고, 이후 홍문관수찬사헌부지평 등 청요직에 있으면서 당시의 권신 윤원형(尹元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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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경상 대학교에 소장된 조선 후기 책판. 여택당 소장 문집 책판은 성재(性齋) 허전(許傳)[1797~1886]의 문집 책판이다. 허전은 1835년(헌종 1)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형조를 거쳐 이조 판서를 지냈다. 실학의 남인 계통으로 1864년(고종 1)에 김해 도호부사로 재직할 때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시행하고, 향약을 강론하여 당시 영남 선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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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 공간에서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위치·기후·식생·토양·지형·해양 등의 자연 현상. 인간 생활과 관계가 깊은 대기와 바다가 만나는 비교적 엷은 접촉대의 환경은 그 구성 요소가 어떤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장소마다 달리 나타난다. 환경의 구성 요소를 분류하고 지구적인 차원에서 그 분포를 연구하는 것은 자연지리학의 본질적인 영역에 속한다. 진주의 위치는 수리적(數理的)으로 동경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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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정치의 목적은 국가 권력의 획득을 통해 국민의 행복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정치체계 내 구성원들 간, 정치참여집단 간 그리고 참여자들 간의 상호관계를 중시한다. 따라서 정치는 참여자 간의 상호작용이나 조정을 중요한 특징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전통시대의 정치와 근대 이후의 정치로 구분하여 고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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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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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본가는 삼가판현(三嘉板峴)[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지역]에 있었고, 토동(兎洞)은 외가이다. 아버지는 조언형(曺彦亨)으로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를 지냈으며 강직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로 충순위(忠順衛) 이국(李菊)의 딸이자 좌의정(左議政) 최윤덕(崔潤德)의 외손녀였다. 조식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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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 아버지는 참봉 조언(趙堰)이며, 어머니는 대사성 강로(姜老)의 딸이다. 진주 소남리에 살았다. 1537년(중종 32) 태어나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합격한 뒤 천거로 안기도찰방(安奇道察訪)이 되었다. 그 뒤 사도시직장(司䆃寺直長)·상서원직장(尙瑞院直長)·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장례원사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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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絶對)의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여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한계를 갖는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에서 기인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고 믿는 절대자에게 의탁하여 현세에서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추구하고, 사후세계에서는 구원을 희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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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면의 기복형태. 지형은 인간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지형 형성은 기후·토양·식생 등과도 깊은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들을 통하여 인간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 진주시의 지형은 진주시 단독으로 분리하여 고찰할 것이 아니라 영남 지방의 지형을 통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영남의 지형은 동부의 태백산맥, 서부의 소백산맥, 중앙부의 낙동강 수계하곡 등, 세 가지 지형 구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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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창촌리 구리마을에서 전승되는 진주 부자와 의령 부자가 경주 최부자 집에 놀러갔다가 망신을 당했다는 설화. 진주, 의령 부자와 경주 최부자 살림 설화는 ‘경주 최부자’ 이야기로 경상도 지역에서는 널리 알려진 설화로 전설적 요소를 가진 민담에 해당한다. 설화에서는 진주나 의령 등 실제 지명을 언급하고, 널리 알려진 최부자라는 인물을 지목하고 있지만 특정 시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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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와 삼천포시(현재 경상남도 사천시로 개편되었음)를 중심으로 전래되고 있는 농악. 진주삼천포농악의 유래는 농사안택축원설(農事安宅祝願說)·군악설(軍樂說)·불교관계설(佛敎關係說) 등이 있으나 농악의 목적에 따라서 당굿과 같은 마을굿·지신밟기·걸립굿·두레굿·판굿 등으로 분리 발전한 것으로 본다. 진주삼천포농악은 12차의 판굿으로서 걸립굿과 두레굿 등의 가락을 12종 36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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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대표하는 명승지. 진주성(晋州城)은 남성동과 본성동에 위치하며, 촉석성(矗石城) 혹은 진양성(晋陽城)으로도 불린다. 조선시대 진주성의 내성과 그 주변 지역 176,804㎡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촉석루(矗石樓)는 남강 가 돌벼랑 위에 세워진 우뚝한 누각으로, 남강 가 뾰족뾰족한 돌의 모양을 따서‘촉석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진주성의 남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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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이후 확립된 군현제도에 의하여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는 치소가 있는 진주의 도시적 구역. 읍치(邑治)란 고려시대 이후 확립된 군현제도에 의하여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는 치소(治所)가 있는 도시적 구역으로, 흔히‘읍(邑)’혹은‘읍내(邑內)’라고 부르는 곳이다. 『삼국사기』지리지(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양지(晋陽誌)』 등에 기록된 건치연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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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설과 관련한 진주 지역의 이야기 상고(上古)에 삼가(三嘉)에서 오는 길은 모태곡(毛台谷)의 철소원(鐵所院)으로부터 대자산촌(大雌山村)과 원동촌(院洞村)을 경유하여 남쪽으로 원동의 재를 넘었고 또 남쪽부지(釜池: 가마못)의 고개를 넘어서 주(州)로 들어왔다. 의령(宜寧)에서 오는 길은 사죽(沙竹)·불천(佛遷)을 거쳐서 주로 들어왔다. 그런데 한 상지관(相地官: 풍수)이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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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타악 합주 음악. 옛날부터 진주는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지로서 문화·교통·행정·교육·산업이 집중되어 있던 곳이다. 도시를 이루고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고, 닷새마다 큰 장이 서면서 신명난 놀이판도 벌어졌다. 서부 경상남도에서 제일 큰 목사골 진주장(晋州場)이 설 때면 각 지방의 농악패 우두머리나 농악잽이 명인들이 팔려 와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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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의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물을 공급하는 시설. 조선시대에는 덕천강 유역에서 수전농업(水田農業)이 크게 발달하였다. 적어도 덕천강 유역의 농업지대는 진주지방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을 것이다. 그래서 진주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된 역사적 사건과 활동을 해석하는 데 덕천강 유역의 수전농업에 대한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조선 초기에 남명 조식(曺植)이 덕천강 상류 덕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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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씨와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어 모여 사는 마을. 진주는 신라시대 구주의 하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항상 영남의 계수관으로 그 위치를 지켜왔으며 토성세력도 강성하였다. 진주의 성씨는 정(鄭), 하(河), 강(姜), 류(柳), 소(蘇), 임(任), 강(康), 김(金), 박(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목(晉州牧) 조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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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진주성 촉석루, 남강 의암, 뒤벼리, 새벼리, 망진산 봉수대, 비봉산의 봄, 월아산 해돋이, 진양호 노을 등 여덟 곳의 비경. 진주는 예로부터 산과 들과 강을 끼고 있는 천혜의 고을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형승조(形勝條)」에는, 고려 명종 때의 문인 이인로(李仁老)[1152~1220]가 지은『파한집(破閑潗)』의 내용을 인용하여 “진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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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임보(任甫), 호는 모송재(慕松齋). 송강(松岡) 하항(河恒)의 아들이다. 어릴 적부터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배우면서 실천에 힘썼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영남 사림을 이끌고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문묘에 종사(從祀)할 것을 조정에 청하는 소를 올렸다. 후진 양성에 힘써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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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까지의 한국전쟁 기간 중 진주지역에서 벌어진 사건. 한국전쟁은 민족의 비극으로서 우리 사회에 큰 피해와 흔적을 남겼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원인, 수행 주체와 성격에 관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중대한 쟁점이 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전쟁을 일으킨 책임 주체를 둘러싼 논란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통주의설과 수정주의설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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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백정(白丁)들의 신분해방운동. 형평운동은 1923년 4월 진주에서 조직된 형평사(衡平社)의 활동을 일컫는다. ‘저울[衡]처럼 평등한[平] 사회를 지향하는 단체[社]’란 뜻을 가진 형평사의 주목적은 가장 차별받던 천민 백정들의 신분해방이었다. 이때 백정들 가운데는 일반인을 능가하는 자산가가 많았고, 교육을 통해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신분의 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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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윤경(潤慶). 호는 송암(松菴). 장무공(莊武公) 황윤(黃潤)의 8대손이다.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 때 의병장이 되어 적을 거창의 소사평(素沙坪)에서 크게 무찔러 공을 세웠다. 무신란은 청주 출신의 이인좌(李麟佐)가 주동이 되어 일으켰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의...